초숙왕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초(楚)나라 35대 국군 19대 왕 숙왕 肅王 | |||
미(羋) | |||
웅(熊) | |||
장(臧) | |||
아버지 | 초도왕(楚悼王) 웅의(熊疑)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370년 |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381년 ~ 기원전 370년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초 도왕이 죽은 뒤 오기를 미워한 초나라 귀족들이 그를 죽였는데, 오기는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알고 기지로 초 도왕 시신 곁에 있다가 거기서 화살에 맞아 죽었다. 그래서 화살이 초 도왕의 시신에 꽂혔는데, 초 숙왕이 그 뒤를 이어 즉위하고, 그것을 용서할 수 없었으므로 오기를 죽인 자[1]의 일족을 멸했는데, 그게 무려 70여 가구에 이르렀다고 한다. 흠좀무.....
초 숙왕 4년(기원전 377년), 초나라는 촉나라의 공격을 받아 자방[2] 땅을 잃었다. 초나라에서는 천관에서 촉군을 막아 물리쳤다.
초 숙왕 6년(기원전 375년), 위나라(魏)가 초나라와 유관에서 싸웠고 노양 땅을 빼앗았다. 이때 한나라(韓)가 초나라의 속국인 정나라를 멸하고 신정(新鄭)에 도읍했다. 한나라에서는 한애후 2년의 일이었다.
초 숙왕 11년(기원전 370년), 초 숙왕이 죽었는데, 그는 아들을 남기지 못했으므로 그 동생인 웅량부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초선왕이다.
재위기간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으나 그의 치세 동안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2006년 발견되어 중국 고대사에 적잖은 수정을 필요하게 한 '청화간 계년' 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초 숙왕 4년(기원전 377년), 초나라는 촉나라의 공격을 받아 자방[2] 땅을 잃었다. 초나라에서는 천관에서 촉군을 막아 물리쳤다.
초 숙왕 6년(기원전 375년), 위나라(魏)가 초나라와 유관에서 싸웠고 노양 땅을 빼앗았다. 이때 한나라(韓)가 초나라의 속국인 정나라를 멸하고 신정(新鄭)에 도읍했다. 한나라에서는 한애후 2년의 일이었다.
초 숙왕 11년(기원전 370년), 초 숙왕이 죽었는데, 그는 아들을 남기지 못했으므로 그 동생인 웅량부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초선왕이다.
재위기간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으나 그의 치세 동안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2006년 발견되어 중국 고대사에 적잖은 수정을 필요하게 한 '청화간 계년' 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1] 오기가 예뻐서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 왕의 시신에 함부로 화살을 쏘아 맞춘 죄를 지어 죽이는 것이다. 이는 초소왕 시절 오나라왕 합려와 그를 도운 오자서가 침공했을 때 오자서가 초평왕의 무덤을 파 굴묘편시한 이후에 왕의 몸에 쇠붙이로 상처입히게 하면 사형에 처하는 법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오기는 이를 이용해 동귀어진을 시도한 것[2] 진무의 고향인 여강군 송자현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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