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단역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청단역 | ||
다국어 표기 | ||
Chŏngdan | ||
靑丹 | ||
주소 | ||
역 등급 | ||
(평양철도총국) | ||
운영기관 | ||
개업일 | ||
1932년 9월 1일 | ||
철도거리표 | ||
배천선 청 단 | ||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청단군은 북한에서 만든 군이다. 1938년 해주시가 승격, 교외가 벽성군이 되었다. 1945년 그어진 38선은 벽성군의 동쪽과 서쪽만 38선 이남으로 만들었고 동쪽은 연백에 병합, 서쪽은 옹진에 병합시키게 된다. 1950년 한국 전쟁이 어느정도 진행된 이후 연백군은 전부 북한에 넘어가고 편입한 룡매도만 휴전 협정때까지 남아있게 된다. 북한은 자기측 연백군에 또 인접지역을 편입시켜놓아 새로 군을 만들었기 때문에 남한의 연백군을 남연백군으로 개칭하여 설치하였다가 1952년 구 벽성지역과 38선 이북 벽성군 동부에 청단군을 만들었다.
문제는 청단이라는 지명이 면단위나 리 단위에서 이전에 쓰인 적이 없다는 점. 그러나 해방 이전부터 청단이라고 이 지역이 불리고 있었다. 이것은 조선시대 교통의 요지인 이곳에 지은 역참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6.25 이전까지 이 곳을 관할하던 경찰서 이름도 청단경찰서였다.
청단읍은 청단 지역의 중심지였던 추화면의 중심지에 만든 읍이다.
6.25 이전에는 황해도 지역에 남한의 마지막 역이 청단역이었다.
화산역 방면으로 덕달로 가는 지선이 분기한다. 역 규모는 1면 4선이다. 북한에 따르면 덕달산에는 엄청난 희토류가 묻혀있다.
문제는 청단이라는 지명이 면단위나 리 단위에서 이전에 쓰인 적이 없다는 점. 그러나 해방 이전부터 청단이라고 이 지역이 불리고 있었다. 이것은 조선시대 교통의 요지인 이곳에 지은 역참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6.25 이전까지 이 곳을 관할하던 경찰서 이름도 청단경찰서였다.
청단읍은 청단 지역의 중심지였던 추화면의 중심지에 만든 읍이다.
6.25 이전에는 황해도 지역에 남한의 마지막 역이 청단역이었다.
화산역 방면으로 덕달로 가는 지선이 분기한다. 역 규모는 1면 4선이다. 북한에 따르면 덕달산에는 엄청난 희토류가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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