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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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수원화성의 동문이다. 그래서 이곳을 칭할 때에 동문이라고도 한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남수동 3-1번지 소재.
조선의 22대 임금인 정조 18년(1794년)에 정조의 부친되는 사도세자의 원을 양주에서 수원으로 이장할때 다른 수원화성 성곽과 함께 건립되었다. 이름은 음양 오행설에서 푸를 '창(蒼)'자가 방위상 동쪽을 의미한다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1]
구조는 돌로 쌓은 홍예문 위에 단층 문루를 세우고 밖으로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한쪽이 열려 있는 옹성을 쌓은 구조이며, 창룡문의 외성인 동옹성은 높이 2.9m, 둘레 17.2m이며 가까운 곳과 먼 곳을 겨냥할 수 있는 총안 14개가 나 있다.
파일:external/commondatastorage.googleapis.com/81073715.jpg
6.25 전쟁 당시 수원 화성이 폭격당할 때 다른 수원 화성 시설보다 홍예까지 파괴될 만큼 매우 심하게 파괴되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찍은 사진과 화성성역의궤 등을 참고하여 1978년에 복원하였다
과거에 성벽이 훼손됐으나, 현재는 문의 좌우로 성벽이 연결되어 있어서 화홍문 - 장안문으로 갈 수 있다. 반면, 팔달문은 남수문 이후 못골 시장·남문 시장 때문에 성곽이 끊겨 있어서 성곽을 따라가진 못하고 그냥 길로 가야한다.
창룡문에서 약간 좌측으로 창룡대로(43번 국도)와 경수대로(1번 국도)가 지난다.
조선의 22대 임금인 정조 18년(1794년)에 정조의 부친되는 사도세자의 원을 양주에서 수원으로 이장할때 다른 수원화성 성곽과 함께 건립되었다. 이름은 음양 오행설에서 푸를 '창(蒼)'자가 방위상 동쪽을 의미한다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1]
구조는 돌로 쌓은 홍예문 위에 단층 문루를 세우고 밖으로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한쪽이 열려 있는 옹성을 쌓은 구조이며, 창룡문의 외성인 동옹성은 높이 2.9m, 둘레 17.2m이며 가까운 곳과 먼 곳을 겨냥할 수 있는 총안 14개가 나 있다.
파일:external/commondatastorage.googleapis.com/81073715.jpg
6.25 전쟁 당시 수원 화성이 폭격당할 때 다른 수원 화성 시설보다 홍예까지 파괴될 만큼 매우 심하게 파괴되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 찍은 사진과 화성성역의궤 등을 참고하여 1978년에 복원하였다
과거에 성벽이 훼손됐으나, 현재는 문의 좌우로 성벽이 연결되어 있어서 화홍문 - 장안문으로 갈 수 있다. 반면, 팔달문은 남수문 이후 못골 시장·남문 시장 때문에 성곽이 끊겨 있어서 성곽을 따라가진 못하고 그냥 길로 가야한다.
창룡문에서 약간 좌측으로 창룡대로(43번 국도)와 경수대로(1번 국도)가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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