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탕족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1764년 만주 올리아스테의 영사에 기록된 문서에서 차탕족에 대한 첫 기록이 적혀 있는데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다.
다르하드 부족으로 보이는 오르츠(Урц)에 사는 수렵민 22명, 순록 192마리가 있다.
3. 문화 [편집]
4. 위기 [편집]
자연개발 및 환경변화로 인해 먹고살길이 없어지면서 순록 목축을 포기하거나 순록을 잡아먹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인들에게 순록의 뿔이나 성기를 팔기까지 하면서 순록 개체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또한 여행사들은 타이가 여행상품을 팔면서 돈을 벌었지만, 차탕족에겐 그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기껏해야 순록뿔로 만든 수공예품, 약초를 팔거나 관광객과 같이 사진을 찍어서 벌어들인 돈 정도..
게다가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들과 대화하는 대신에 사진 촬영에만 급급하며 심지어 쓰레기만 버리고 가서 이들의 생활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한다.[7] 동시에 외부인들과의 접촉으로 인해 젋은 차탕족들 사이에서 도시에 정착하고 취직하는 이들이 늘어가면서 순수 차탕족들은 현재진행형으로 줄어드는 중이다.
또한 타부족을 피해 족내혼을 해왔던 탓에 유전병도 심하다고 한다.
또한 여행사들은 타이가 여행상품을 팔면서 돈을 벌었지만, 차탕족에겐 그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기껏해야 순록뿔로 만든 수공예품, 약초를 팔거나 관광객과 같이 사진을 찍어서 벌어들인 돈 정도..
게다가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들과 대화하는 대신에 사진 촬영에만 급급하며 심지어 쓰레기만 버리고 가서 이들의 생활에 지장을 주고 있다고 한다.[7] 동시에 외부인들과의 접촉으로 인해 젋은 차탕족들 사이에서 도시에 정착하고 취직하는 이들이 늘어가면서 순수 차탕족들은 현재진행형으로 줄어드는 중이다.
또한 타부족을 피해 족내혼을 해왔던 탓에 유전병도 심하다고 한다.
[1] 순록을 가지고 있는 자들. 해당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36년부터이다.[2] 정확히는 투바인의 분파인 투바 토지네츠인 계통에 속해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본래 민족명도 투바와 비슷한 두카.[3] 현재 남아있는 튀르크족 중 제일 적은 인구수다.[4] 이주한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국경지대는 곧 이들의 영역이고, 이곳 스텝 지역에 살던 몽골인들과도 사이가 좋았기 때문이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당시 소련은 식량난에 빠져 차탕족의 가축들을 징발해갔으며, 이때 하필 전염병의 확산으로 많은 수의 학생들이 사망하였다. 또한 소련의 집단화 정책으로 가축을 잃어버릴 두려움 탓도 있었다.[5] 그러나 전통복식은 외몽골의 할하인에 가깝다.[6] хадаг/Khadag, 몽골이나 티베트 지역에서 상서로움과 극진한 정성을 표시할 때 신에게 바치거나 상대방에게 선사하는 가늘고 긴 비단천을 말한다.[7] 결국 2012년 차탕족 마을을 방문한 대통령이 노인과 어린이가 많은 차탕족 가족에게 정부가 따로 급료를 지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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