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제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차병제(車秉濟)
생몰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차병제는 1899년경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만주 유하현 삼원보로 이주했고, 1919년 만주에서 이탁의 주도하에 결성된 27결사대에 가담했다. 이 결사대의 목적은 을사오적정미칠적을 암살하는 것이었다. 그와 손창준, 박진태, 안경식, 박기한 등 결사대 동지들은 1919년 3월 3일 고종의 인산날에 거사하기로 결의하고 서울에 들어왔지만, 거사 당일까지 무기가 입수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해 3월 10일 이탁으로부터 권총과 탄환을 받아낸 그는 동지들과 함께 일제에 대한 성토문과 격문을 여러 곳에 게시하는 한편 자재차 거사할 기회를 엿보았고, 3월 20일에는 손창준, 박기한, 이기원(李基源) 등과 함께 인사동에 거주하는 한봉취(韓鳳翠)의 집에 찾아가 군자금 120원을 받아냈다. 하지만 서울 시내는 이미 일제의 비상경계망이 펼쳐진 상태여서 좀처럼 거사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6월 5일 일부 대원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후 1919년 9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행적,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차병제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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