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소후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진(晉)나라 12대 국군 소후 昭侯 | |||
희(姬) | |||
진(晉) | |||
백(伯) | |||
아버지 | 진목후(晉穆侯) 희비왕(姬費王) | ||
숙부 | 곡옥환숙(曲沃桓叔) 희성사(姬成師)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739년 |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745년 ~ 기원전 739년 | |
1. 개요 [편집]
2. 치세 [편집]
진 소후 원년(기원전 745년), 자신의 숙부인 희성사의 세력이 강력했기 때문에 그 세력이 두려워 희성사를 곡옥의 백작에 봉하였다. 희성사는 후세 사람들로부터 곡옥환숙이라 불리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은 진과 곡옥을 이분하는 복선이 되었는데, 그 까닭은 곡옥환숙 자신이 조카의 진나라를 지배하여 진후(晉侯)가 될 야심을 품었기 때문이다.
진 소후 6년(기원전 739년), 진나라의 대신 반보(潘父)가 곡옥환숙과 내통하여, 진 소후를 시해하고 진나라의 수도인 익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진나라 사람들이 이에 반발하여 군사를 일으켜 곡옥환숙을 익에서 내쫓았다. 진나라 사람들은 진 소후의 아들인 희평을 진후로 모시니 그가 바로 진효후이다. 진 효후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반보를 주살했다. 진소후의 죽음은 곡옥대진의 시작에 불과했다.
진 소후 6년(기원전 739년), 진나라의 대신 반보(潘父)가 곡옥환숙과 내통하여, 진 소후를 시해하고 진나라의 수도인 익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진나라 사람들이 이에 반발하여 군사를 일으켜 곡옥환숙을 익에서 내쫓았다. 진나라 사람들은 진 소후의 아들인 희평을 진후로 모시니 그가 바로 진효후이다. 진 효후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반보를 주살했다. 진소후의 죽음은 곡옥대진의 시작에 불과했다.
[1] 뒤에 나오겠지만 희성사의 세력이 강력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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