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덕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당나라의 인물.
2. 생애 [편집]
직방랑중으로 641년에 고구려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으며, 고구려에서 돌아와 8월 10일에 귀국했다. 진대덕은 고구려의 경계로 들어가 산천, 풍속을 알기 위해 도착하는 성읍마다 그 곳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비단을 주면서 자신은 본래 산수를 좋아하니 이 곳에 명승지가 있다면 보고 싶다고 말했다.[1]
그러자 지키던 사람이 기뻐해 진대덕을 이끌고 돌아다녀서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진대덕은 고구려에서 중국인을 만나게 되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집은 어느 군에 있었다던가, 수 말년에 징집되었으나 전쟁 중 포로가 되었다던가, 고구려에서 떠돌아다니는 여자를 처로 삼게 해 거주하게 되었다던가, 현지인들과 섞여 사는 중국인 포로가 부근 인구의 거의 반이나 될 것이라던가 등이었다. 진대덕은 그들이 친척의 생사 여부를 물으면 걱정없다고 대답했으며, 그 말에 포로가 된 중국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진대덕을 바라보고 곡을 하는 포로들이 가득했다.[2]
진대덕은 당나라에 귀국해 당태종에게 보고하면서 그 나라는 고창[3]이 망했다는 소식을 알고 크게 두려워해 관리들이 부지런한 것이 보통 때보다 배가 되었다고 했다.
그러자 지키던 사람이 기뻐해 진대덕을 이끌고 돌아다녀서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진대덕은 고구려에서 중국인을 만나게 되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집은 어느 군에 있었다던가, 수 말년에 징집되었으나 전쟁 중 포로가 되었다던가, 고구려에서 떠돌아다니는 여자를 처로 삼게 해 거주하게 되었다던가, 현지인들과 섞여 사는 중국인 포로가 부근 인구의 거의 반이나 될 것이라던가 등이었다. 진대덕은 그들이 친척의 생사 여부를 물으면 걱정없다고 대답했으며, 그 말에 포로가 된 중국인들은 눈물을 흘렸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진대덕을 바라보고 곡을 하는 포로들이 가득했다.[2]
진대덕은 당나라에 귀국해 당태종에게 보고하면서 그 나라는 고창[3]이 망했다는 소식을 알고 크게 두려워해 관리들이 부지런한 것이 보통 때보다 배가 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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