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구경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생애 [편집]
陳九經 (?~?)
명나라의 인물로, 진린의 아들이다.
좌영도사를 지내 정유재란 때인 1598년에 양광수병 2천 명을 거느리고 물길을 따라 노량으로 향해 전투에 참전했으며, 왜군 병사 둘이 진린의 배에 뛰어들어 진린을 위협하자 진구경은 몸으로 적의 칼을 막아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계속 분전하다가 문위가 급히 달려들어 왜군 병사 둘을 모조리 창으로 찔러 죽였다.
진린이 각 아문에 보고한 첩문에 따르면 진구경이 시마즈 요시히로를 생포했다는 말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생포되지는 않고 요시히로는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서 퇴각했다. 정유재란이 끝나고 진린과 함께 명나라로 귀국했고, 그 후 나라의 국운을 두고 애산에서 청나라군과 싸우다 전사했다.[1]
한편 그의 아들인 진영소는 감국수위사(監國守衛使)로 있던 중 애산에서의 비보와 나라까지 망하자 '원수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며 식솔들을 데리고 고금도를 거쳐 해남에 정착해 한국계 광동진씨의 시조가 되었다.
명나라의 인물로, 진린의 아들이다.
좌영도사를 지내 정유재란 때인 1598년에 양광수병 2천 명을 거느리고 물길을 따라 노량으로 향해 전투에 참전했으며, 왜군 병사 둘이 진린의 배에 뛰어들어 진린을 위협하자 진구경은 몸으로 적의 칼을 막아 부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계속 분전하다가 문위가 급히 달려들어 왜군 병사 둘을 모조리 창으로 찔러 죽였다.
진린이 각 아문에 보고한 첩문에 따르면 진구경이 시마즈 요시히로를 생포했다는 말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생포되지는 않고 요시히로는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서 퇴각했다. 정유재란이 끝나고 진린과 함께 명나라로 귀국했고, 그 후 나라의 국운을 두고 애산에서 청나라군과 싸우다 전사했다.[1]
한편 그의 아들인 진영소는 감국수위사(監國守衛使)로 있던 중 애산에서의 비보와 나라까지 망하자 '원수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며 식솔들을 데리고 고금도를 거쳐 해남에 정착해 한국계 광동진씨의 시조가 되었다.
2. 미디어믹스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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