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강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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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秦)나라 11대 국군 강공 康公 | |||
영(嬴) | |||
조(趙) | |||
앵(罃) | |||
아버지 | 진목공(秦穆公) 영임호(嬴任好)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609년 |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620년 ~ 기원전 609년 | |
1. 개요 [편집]
2. 재위 기간에 일어난 일 [편집]
진 강공 원년(기원전 620년), 원래 진(晉)나라에서 원래 조돈(趙盾)이 진 강공의 친척인 희옹(姬雍)을 세우려고 했으나 마음이 바뀌어 진양공(晉襄公)의 아들인 희이고(姬夷皐)를 즉위시키니 그가 바로 진영공(晉靈公)이다. 이에 진 강공은 노하여 진나라의 영호를 쳤으나 패배했다. 진 목공이 죽어서 국운이 쇠해서 그렇다.[1]
진 강공 2년(기원전 619년), 진(晉)나라를 쳐서 무성을 빼앗아 1년 전의 한을 풀었다.
진 강공 4년(기원전 617년), 진(晉)나라가 거기에 대한 복수로 진(秦)나라의 소량을 취했다.
진 강공 6년(기원전 615년), 진 강공이 진(晉)나라의 기마를 빼앗자 진(晉)나라는 하구에서 진(秦)나라에게 패했다. 진(晉)나라의 수회가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수여로 하여금 진(晉)나라에 반역한 것처럼 꾸며 결국 진(晉)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진 강공 12년(기원전 609년), 진 강공이 죽고 아들인 영도(嬴稻)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진 공공이다.
진 강공 2년(기원전 619년), 진(晉)나라를 쳐서 무성을 빼앗아 1년 전의 한을 풀었다.
진 강공 4년(기원전 617년), 진(晉)나라가 거기에 대한 복수로 진(秦)나라의 소량을 취했다.
진 강공 6년(기원전 615년), 진 강공이 진(晉)나라의 기마를 빼앗자 진(晉)나라는 하구에서 진(秦)나라에게 패했다. 진(晉)나라의 수회가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수여로 하여금 진(晉)나라에 반역한 것처럼 꾸며 결국 진(晉)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진 강공 12년(기원전 609년), 진 강공이 죽고 아들인 영도(嬴稻)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진 공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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