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위치는 불명이며, 소국일 당시의 기록은 없지만
아신왕이 즉위할 때 천황에게 무례했기 때문에 이 지역을 빼앗고
전지왕을 볼모로 데려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백제도 멸망하고
웅진도독부가 설치될 때 지심주(支潯州)라는 곳이 이곳과 동일한 위치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르면
충청남도 예산군에 위치한다.
八年 春三月, 百濟人來朝[百濟記云, 阿花王立无禮於貴國. 故奪我枕彌多禮, 及峴南·支侵·谷那·東韓之地. 是以, 遣王子直支于天朝, 以脩先王之好也.].
8년 봄 3월에 백제인이 내조하였다[『백제기(百濟記)』에 “
아화왕(阿花王)이 즉위하여 귀국에게 무례하였다. 그래서 우리의 침미다례 및 현남(峴南),
지침(支侵), 곡나(谷那), 동한(東韓)의 땅을 빼앗았다. 이에 왕자
직지(直支)를 천조(天朝)에 보내 선왕의 우호를 닦도록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