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도 관계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중인관계에서 넘어옴
파일:external/img.timeinc.net/inda_china_zoher_1121.jpg
中印關係 (간체: 中印关系)
भारत-चीन सम्बन्ध (바라트-친 삼반드)

목차
1. 개요2. 교류3. 갈등4. 주변국과의 관계5. 국력 비교6. 관련 문서

1. 개요 [편집]

파일:external/bizresearchlabs.com/india_china_blog.png

2020년 기준 두 나라는 모두 13억이 넘는 인구 대국으로[1], 이들 두 나라만으로 지구 인구의 1/3 이상을 구성하며, 브릭스로 대표되는 신흥 경제성장국인데다가 군사적으로도 핵보유국이며, 티베트 (달라이 라마 망명정부)독립 문제 및 국경·영토분쟁(악사이친, 아루나찰프라데시, 카슈미르) 도 겪고 있고, 동남아시아 일대의 정치 · 경제 · 군사적 영향력을 두고 충돌하고 있다.

또한 미국에게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있어 일본, 한국, 호주와 함께 가장 큰 카드이다.

참고로 최근 통계를 기반으로 해서 두 나라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
중위연령
인터넷 사용자 수
경제 활동 인구
GDP 대비 군사비
외환보유고 및 금 보유고
중국
14.06억 명[2]
37.6세
14조 8,607억 달러
2.26조 달러
  1. 84조 달러
96%
7.21억 명
8.07억 명
  1. 9%
-1.4%
3.00조 달러
인도
13.71억 명
27.1세
2조 5,925억 달러
0.30조 달러
0.46조 달러
74%
4.62억 명
5.11억 명
2.5%
-1.5%
0.42조 달러

2. 교류 [편집]

기원전에 인도는 서양보다 이르게 중국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인도 사람들은 산스크리트어로 중국을 cina로 불렀다.[3] 인도의 중세 서사시인 마하바라타라마야나에는 인도에 들어온 중국인들이 브라흐민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아 계급이 수드라로 강등되었다(...)는 언급도 있다.

비록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지형적 방벽 때문에 직접적인 교류는 어려웠지만 오늘날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해당하는 토하리스탄을 통해 그리고 해상 무역을 통해서도 많은 교류가 이루어졌다. 당나라 시절에는 장안에 힌두교 사원 및 인도인들이 거주하는 구역이 따로 존재했다.

인도가 중국에 끼친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일단 인도 문화권이 중국을 영원토록 변화시킨 문화요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불교가 있다. 인도 문화권에서 발원한 불교는 중국에서 꽃을 피웠고, 인도에서는 거의 사그라들었다. 중국에서 외국 서적이 대규모로 번역된 경우는 아편전쟁 이전에는 불교 경전 번역, 원나라 때 이슬람 서적 번역 정도가 있는데, 번역 규모와 기간 자체는 불교 서적 번역 사업이 더 컸다. 이 와중에 인도의 여러 학문과 과학이 중국에 유입된 것은 물론이다. 중국의 장기손오공도 인도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국과 인도의 관계는 식민지와 반식민지 경험을 당한 동병상련의 경험 때문에, 양국의 건국 직후에는 상당히 좋았다.1949년 장제스 정권을 대만으로 패퇴시키고 베이징에 세운 중공정권을 세계에서 첫번째로 승인한 것은 바로 1948년 영국에서 갓 독립한 인도였다. 한국전쟁에서도 인도는 남북 모두 똑같이 의료지원하는 방식으로 중립을 지켰지만, 그 밖의 문제에서 중인 양국은 매우 가까웠다. 중공이 미국과 수교가 되어 있지 않았을 때인 1950년대, 장제스의 중화민국이 아니라 중공측을 자신의 조국으로 생각하는 미국내 중국교민들의 비자-여권 업무는 주미 인도 대사관이 대리했을 정도.

하지만 이렇게 좋았던 관계는 양국이 주변국가를 병합하며 국경을 맞닿게 되자 갑자기 껄끄러워진다. 중국이 티베트를 합병하자,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 총리도 비슷한 팽창주의를 시전했으며, 독립후 1950년대 영연방 인도령 내에 반독립 상태로 있던 히말라야 방면의 여러 소국들(시킴, 아삼)을 합병하면서 부탄을 경계로 중인 양국은 군사적으로 대치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서로 급격히 사이가 나빠졌으며, 결과적으로 1959년 중인전쟁이 발발하여 총칼을 맞대게 된다. 이후 인도는 중국과 사이가 나쁜 소련과, 중국은 인도와 사이가 나쁜 파키스탄과 편을 갈라 대치했고, 결과적으로 교류는 거의 없어진다.

중국-인도 간의 항공기 직항편도 얼마 없어 홍콩 국제공항을 경유했으며 수출 / 수입도 홍콩을 중재지로 쓸 뿐 상호 간 직교역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중국이 경제적 투자가 많아지면서 인도 시장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세계 인구 2위에 막대한 부유층이라든지 중국 못지 않은 황금시장인 인도를 구경만 할 리가 없다.샤오미 제품이 중국도 놀랄 정도로 인도에서 단기간에 막대한 판매량을 보이자 인도에서 제품 판매를 일시 금지해버렸듯이 중국 기업들도 인도 시장에 대하여 이젠 무시 못한다.[4]

영토 문제로 둘이 서먹서먹하여 아직 제대로 된 통계가 없으나 인도라고 마냥 중국을 무시할 수도 없는데 상임이사국 항목에도 나오듯이 2014년 일본을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상임이사국 선정에 협조를 부탁한 아베 신조에게 말을 피하며 비협조로 나섰고 일본 언론도 인도조차도 중국에만 신경 쓰며 홀로 중국을 달래고 있다고 한탄했다. 인도 입장에선 오히려 일본과 손 잡았다가 러시아와의 관계도 나빠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안 하니만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상임이사국 항목에 나오듯이 일본, 인도, 브라질, 독일의 상임이사국 반대를 부르짖는 나라들인 커피 클럽의 협동만 높이기 때문. 게다가 인도의 대외정책은 현재 친서방 성향이긴 하지만 중립에 가깝기에 더욱 그렇다.

서로 브릭스상하이협력기구 그리고 AIIB로 연관성이 있다. 물론 상하이협력기구는 인도가 러시아와의 친교로 가입한 면이 크기도 하다.

중국이 주도하는 AIIB 지분율 2위가 바로 인도다 연합뉴스

인도는 중국을 대한 입장이 일본과 미국의 입장과는 조금 다르다. 중국의 팽창은 단호히 반대하지만, 어느 정도의 협조를 유지하는 편이다.

인도는 냉전시절에도 기본적으로 제3세계의 맹주로서 미국-소련과도 양다리를 걸쳐왔으며, 인도는 G7에 맞서 중러가 주도하는 상하이 협력기구에 가입했다.

2018년에는 중국의 눈치를 봐서 자국내에 망명한 달라이 라마의 활동도 규제하기 시작했다. #

사실 중국이 압도적으로 국력이 강하다 해도 두 나라가 모두 군사강국이며, 경제대국이기도 한 현실을 감안하면 직접적인 대결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며, 중국과 인도 두 나라의 대국관계는 장차 미중관계, 미러관계, 중러관계와 같은 적대적 공생이 될 확률이 높다.

이와 별개로 양국간의 사이는 나쁜편이지만 일부 인도인들은 중국의 이슬람 탄압정책을 옹호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3. 갈등 [편집]

옛날에는 중국과 인도의 사이가 의외로 좋았다. 영토 분쟁 지역이 겹치는 경우도 극히 드물었고 둘 다 교류할 내용들도 많았고 서로 도움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중국에 뿌리내린 불교의 원산지가 인도였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20세기나 돼서 2천여년 만에 처음으로 문제가 생긴 것. 물론 이는 인도가 진짜 통일국가를 만들어본 적이 없어 딱히 중국 같은 큰 나라와 덩어리끼리 충돌할 만한 상황도 잘 안 만들어졌고 과거 중국은 현재 영토보다 더 서쪽 영역이 적고, 동쪽으로 흐르는 강이 있는 지역 근처를 중심으로 하는 국가라서 부딪힐 일이 없던 탓도 크다. 19세기 말, 인구 밀도나 국경 개념이 희박했던 지역에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영국의 외무부에서 제멋대로 선을 그으면서 인도의 독립 후에 양국의 충돌을 불러온 것.

1962년 아루나찰프라데시 주에서 이른바 중인전쟁으로 불리는 국경분쟁이 있었고, 이는 중국의 승리로 끝났다. 이는 청나라의 멸망 이후 인도 제국을 다스린 대영제국맥마흔 라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파일:external/2.bp.blogspot.com/photo%2B2.jpg

주요한 영토분쟁지역은 중국이 소유한 카슈미르 일부 아크사이친, 인도가 소유한 아루나찰프라데시가 있다. 물론 중국이 소유한 쪽이 훨씬 쓸모가 없는 땅이지만 그래도 땅은 땅이라서 인도에서 돌려달라고 하긴 한다.

게다가 2017년 중국이 부탄과 접한 도클람 지역에 도로를 건설하면서 부탄 측이 반발했고 인도 측도 중국을 비판했다.#

2017년 7월 6일 기사에 따르면 국경 지역에 3,000명의 병력들이 대치 중이라고 한다. #

2017년 7월 13일 기사에 따르면 인도군은 이 지역에 20만 명의 병력을 배치하였다. 인도군, 중국과 대치 국경지역에 20만 병력 집결

2017년 7월 20일 중국 측에서는 이에 대응해 군수물자와 수술용 혈액을 티베트 자치구에 집결시키는 등 긴장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중국군, 인도군과 대규모 무력충돌 임박 징후 결국 양측은 8월 말 대치 상태를 중단하는데 합의했다. 이와 관련된 이슈는 2017년 중국-인도 국경 분쟁 항목 참고.

다만 양국 모두 군사강국으로 충돌은 승패에 관계없이 국제관계에 매우 부담되기 때문에 한발자국씩 물러섰다.

인도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주변국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RCEP를 추진하면서 인도를 배제할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20년 6월 16일에 2020년 중국-인도 국경 분쟁이 발생하였다.

아루나찰프라데시 주의 국경지대에서 인도인 남성 5명이 중국 인민해방군에 의해 납치됐다는 인도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현재 중인관계는 지금의 한일관계급 그 이상으로 사이가 안 좋아졌다는게 중론이다. 그나마 온건한 성향이였던 장쩌민후진타오 집권기때는 그나마 나은 편이였다.

인도-중국 국경 분쟁의 영향인지, 인도에서 중국어를 제2외국어 교육 과정에서 제외시키고, 한국어, 태국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를 추가시켰다고 한다.

4. 주변국과의 관계 [편집]

국제적으로 인도는 미국, 러시아와, 그리고 중국은 파키스탄과 절친한 편이다. 양측 모두 인도를 견제하기 위한 의미가 크고 이는 실제로 효과가 나름 있어서 파키스탄은 대표 친중 국가로 꼽힐 정도. 사실 중국과 관계가 불편한 국가는 한둘이 아니긴 한데 그래도 보통은 국력 차이를 의식해서 한 쪽이 어느 정도 접어주는 수준으로 그치거나 거리상의 문제로 서로 간섭이 힘들기 때문에 의외로 충돌 가능성은 거의 없는 반면 중국-인도-파키스탄은 모두 핵보유국이라 서로가 서로에게 꿇릴 일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한반도 다음으로 위험한, 오히려 의외로 첫 전쟁 발생지가 될 수도 있는 곳이다. 그래서 세 나라 모두 정치적으로 서로와의 관계를 엄청나게 신경쓰는 편이다.

파키스탄의 신드 주(州)에서는 중국어를 의무과목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 반면 부탄 같은 곳은 중국보다는 인도에 더 가깝다. 그래서 2017 국경분쟁때도 사실 원래 시작은 부탄-중국 문제였는데 인도가 거의 부탄의 대리분쟁국 수준으로 싸워줬다.

최근 남중국해 문제까지 있어 인도가 미국, 일본과 합동 군사 훈련을 벌였다. 기사 그리고 여기에 중국과 사이가 안 좋은 대만이 끼어들어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대만-베트남-싱가포르-인도로 대중국 포위망이 구성되고 있다. 이에 중국도 질세라 미얀마-파키스탄-스리랑카와 연합해 대 인도 포위망을 만든 건 덤이다.

이런 인도 견제를 위해 중국은 파키스탄스리랑카, 그리고 북아프리카 지부티에 해군기지를 마련해서 인도양에 출동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었다.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을 묶는데 선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개시했으며, 이때문에 육로로는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해로로는 인도양을 통해 아프리카까지 진출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중국의 인도양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인도는 미국과 일본, 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대표적 해양 국가들과의 제휴 강화로 대응하고 있다. 이는 나렌드라 모디 현 수상의 '동방 개입'(Act East) 정책, 그리고 인도양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단일 전략공간으로 규정하는 '인도-태평양'(Indo-Pacific) 개념으로 구체화되는 중이다.

5. 국력 비교 [편집]

6. 관련 문서 [편집]


[1] 총인구가 10억을 넘기는 나라는 중국과 인도 외에는 없다.[2] 중국은 산아제한 정책의 성공으로 소위 흑해자라 불리는 호적에 올라오지 않은 아이들이 워낙 많아 실제로는 중국 인구가 13억이라고 공식화 되었을 때 이미 15억이 넘었다는 말들이 많았다. [3] 후에 그리스 로마 사람들이 이 cina를 sina또는 sinae로 음역한다.[4] 스마트폰 시장의 경우도 샤오미가 삼성을 재치고 인도 스마트폰 시장 1위를 유지하고있다.#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