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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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인목왕후 폐모론이 불거지는 과정에서 둘을 모두 살려야한다고 해서 중북이 형성되었다.
중자(中子)로 표현되기도 하였으며 대북과 소북의 중간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중북은 붕당이라기 보다는 학연이나 지연 등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따라 입장을 같이했던 세력들의 일시적인 정치적 분파이다. 유몽인·정창연 소속이며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소북, 남인이나 서인으로 바꾸었다.
유몽인을 비롯해 정창연·이명·유만·유혁 등이 중북에 소속이였다. 1615년 광해군 7년 영창대군의 처형이 부당함을 상소했던 정온(鄭蘊)을 지지한 문경호와 강익문의 부자, 그리고 이대기 등도 중북으로 분류되었다.
1621년에는 삼사(三司)에 대거 포진하는 등 권력의 한 축을 차지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북인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붕당으로 소북에 붙거나 남인 또는 서인으로 잔향하면서 분파의 이름이 소멸되었다.
중자(中子)로 표현되기도 하였으며 대북과 소북의 중간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중북은 붕당이라기 보다는 학연이나 지연 등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따라 입장을 같이했던 세력들의 일시적인 정치적 분파이다. 유몽인·정창연 소속이며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소북, 남인이나 서인으로 바꾸었다.
유몽인을 비롯해 정창연·이명·유만·유혁 등이 중북에 소속이였다. 1615년 광해군 7년 영창대군의 처형이 부당함을 상소했던 정온(鄭蘊)을 지지한 문경호와 강익문의 부자, 그리고 이대기 등도 중북으로 분류되었다.
1621년에는 삼사(三司)에 대거 포진하는 등 권력의 한 축을 차지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북인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붕당으로 소북에 붙거나 남인 또는 서인으로 잔향하면서 분파의 이름이 소멸되었다.
3. 주요 인물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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