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과부적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衆 | 寡 | 不 | 敵 | |||
무리 중 | 적을 과 | 아닐 부 | 원수 적 | |||
1. 개요 [편집]
적은 수효(數爻)로 많은 수효(數爻)를 대적(對敵)하지 못한다는 뜻.
2. 반례 [편집]
이 문서에 나열된 중과부적의 반례는 말 그대로 반례이다.
소수의 세력으로 다수를 이긴 경우가 유명하고 후세에도 이어져 내려오는 이유는 그럴 경우가 거의 없는데 정말 기적적으로 그것을 했기 때문이다. 소수의 세력으로 다수를 이긴 경우가 역사상 무수하다면 딱히 그 이야기들이 유명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세력이 소수의 세력에 패하면 후손대대로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같은 이유로 그런 상황이 역사상 흔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이라는 이 평범한 진리가 고사성어로 내려오는 이유는 나는 특별하다는 선민의식에 빠져 자신을 파멸의 나락으로 이끄는 사람들이 옛날에도 많았기 때문이다.
소수의 세력으로 다수를 이긴 경우가 유명하고 후세에도 이어져 내려오는 이유는 그럴 경우가 거의 없는데 정말 기적적으로 그것을 했기 때문이다. 소수의 세력으로 다수를 이긴 경우가 역사상 무수하다면 딱히 그 이야기들이 유명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세력이 소수의 세력에 패하면 후손대대로 조롱거리가 되는 것은 같은 이유로 그런 상황이 역사상 흔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이라는 이 평범한 진리가 고사성어로 내려오는 이유는 나는 특별하다는 선민의식에 빠져 자신을 파멸의 나락으로 이끄는 사람들이 옛날에도 많았기 때문이다.
2.1. 전투 [편집]
- 1126년 송나라 지방관과 금나라 사신 호위대의 충돌: 금군 17명 vs 송군 2000명
- 대창원 전투: 금군 400명 vs 몽골군 8000명
- 용인 전투: 조선군 7~8만 명 vs 일본군 1600명
- 명량 해전: 조선군 13척 vs 일본군 대략 300여척
- 쌍령 전투: 조선군 40,000여명 vs 청군 대략 300~1000여명
- 팽성대전: 초군 30,000여명 vs 한군 약 560,000여명
- 정형 전투: 한군 30,000여명 vs 조군 약 200,000여명
- 베티고지 전투: 대한민국 국군 36명 vs 중공군 800명
- 길주성 전투: 고려군 2,000명 vs 여진군 60,000명
- 제1차 진주성 전투: 조선군 3,800명 vs 일본군 30,000명
- 카가얀 전투 스페인군 40명 vs 일본 왜군 1,000명
2.1.1. 비록 졌지만 잘 싸운 경우 [편집]
2.1.2. 논란이 있는 경우 [편집]
2.2. 가공의 경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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