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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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검은 비단으로 만든 고려 후반~조선시대 여성들의 관모로, 족아, 족두, 족관 등이라고도 부른다. 원류는 원나라의 부인들이 썼던 모자인 고고리(古古里)가 고려에 전해져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말선초의 인물인 조반(趙胖, 1341~1401)의 부인 계림 이씨의 초상화의 족두리로 추정되는 모자와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보아 시간이 지날수록 크기가 점점 작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크기가 작아지면서 다른 모자인 화관이랑 비슷하게, 쪽머리에 첩지를 착용하고 족두리를 쓴다.[1]

1756년에 영조가 사치 조장과 계층위화감 조성, 안전성 문제를 이유로 가체 금지령을 내려 기본 쪽머리와 족두리를 권하기도 하였으나 보석으로 치장된 족두리들이 유행하면서 가체보다 더 비싸지는 풍선효과가 발생하자 시행된 지 7년만에 실패, 가체를 다시 허용했다. 정조 대에서야 남편의 지위에 따라 족두리의 장식에 차등을 두자는 의견이 나왔고, 이때부터 궁중에서 족두리 착용이 정착되었다.

어여머리를 할 때 얹는 가체 사이의 동그란것도 족두리이다. 솜족두리(어염족두리)라고 한다.

새색시가 쓰는 족두리는 칠보족두리 라고 하는데, 오늘날에는 전통 혼례를 치를 때 신부가 쓰는 용도로 쓰인다.

위키피디아에서 영어로 "Where is jokduri from" 치면 중국이 기원이라고 뜬다
[1] 족두리의 안은 비어있기 때문에 첩지가 족두리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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