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순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 조희순(曺喜舜) |
본관 | |
생몰 | |
추서 | 대통령표창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조희순은 1888년 7월 9일 경상남도 창원군(현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감계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창원면 독립만세운동 계획에 참여하여 북면 주민들에 대한 연락 및 규합·군중 동원의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3월 23일 창원군 창원면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북면 주민들을 규합하여 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이어 조윤호 등의 청년들이 주도한 4월 2일 창원면에서의 제2차 독립만세운동에서도 조희순은 적극 참여하여 6~7천여명의 군중들과 한 목소리로 조국의 독립을 외쳤다. 이 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그 해 5월 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언도받고 마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1967년 2월 23일 별세하였다.
199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1919년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창원면 독립만세운동 계획에 참여하여 북면 주민들에 대한 연락 및 규합·군중 동원의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3월 23일 창원군 창원면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북면 주민들을 규합하여 만세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이어 조윤호 등의 청년들이 주도한 4월 2일 창원면에서의 제2차 독립만세운동에서도 조희순은 적극 참여하여 6~7천여명의 군중들과 한 목소리로 조국의 독립을 외쳤다. 이 사건으로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그 해 5월 9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언도받고 마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조용히 지내다가 1967년 2월 23일 별세하였다.
199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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