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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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실존인물 [편집]
2.1. 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 [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Sophiechotek1868-2.jpg
1868년 3월 1일~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비. 본명은 조피 혼테크 폰 폿쿠바.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조카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아내였다. 귀천상혼이어서 그런지 시가(媤家)와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다고.
백작 영애였기 때문에 신분의 격이 맞지 않았다고 여겨져서,[1] 대공과 결혼하면서 호엔베르크 여공작 직위를 수여받았다. 하지만 1914년 사라예보에서 남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함께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하게 되었다.
여기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함께 암살하려했던 목표는 조피가 아니었다. 프린치프의 또다른 목표는 같이 동승했던 보스니아 총독 오스카 포티오레크(Oskar Potiorek, 1853.11.20~1933.12.17)였는데 프린치프의 총기오발로 죽은것이다. 이후 프란치프는 조피의 죽음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명했다.
자녀로는 프란츠 페르디난트 사이에서 낳은 2남 1녀가 있다.
1868년 3월 1일~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비. 본명은 조피 혼테크 폰 폿쿠바.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조카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아내였다. 귀천상혼이어서 그런지 시가(媤家)와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다고.
백작 영애였기 때문에 신분의 격이 맞지 않았다고 여겨져서,[1] 대공과 결혼하면서 호엔베르크 여공작 직위를 수여받았다. 하지만 1914년 사라예보에서 남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함께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하게 되었다.
여기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함께 암살하려했던 목표는 조피가 아니었다. 프린치프의 또다른 목표는 같이 동승했던 보스니아 총독 오스카 포티오레크(Oskar Potiorek, 1853.11.20~1933.12.17)였는데 프린치프의 총기오발로 죽은것이다. 이후 프란치프는 조피의 죽음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명했다.
자녀로는 프란츠 페르디난트 사이에서 낳은 2남 1녀가 있다.
3. 가상인물 [편집]
[1] 당시 유럽 왕실은 외국의 왕족이나 황족과 결혼해야만 했다. 영지 문제가 걸려 있고, 예외적인 경우가 있던 영국의 경우에도 계승권 낮은 자들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외국 왕족과 혼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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