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현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분류
대한민국 제14 · 17대 국회의원 조일현 曺馹鉉 | |
출생 | |
본관 | |
학력 | |
병역 | 육군 병장 만기전역 |
가족 | 배우자 이정숙, 슬하 1남 1녀 |
소속 정당 | |
지역구 | |
의원 선수 | 2 |
의원 대수 | |
현직 | 농촌문제연구소장 |
경력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2.1. 정치 경력 [편집]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근로농민당 후보로 강원도 원주시-원성군-횡성군-홍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김용대 후보와 한국국민당 함종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강원도 홍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응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자유당 이응선 후보에 설욕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최연소 당선자였다. 제14대 대통령 선거 직후 김영삼 정권이 통일국민당 국회의원을 빼가는 와중에서도 통일국민당에 잔류하였고, 해당 인연으로 배우 강부자는 조일현의 후원회장을 역임하였다. 1993년 통일국민당 정책위원회 의장에 임명되었다. 1994년 통일국민당이 신정치개혁당과 합당하여 신민당이 되자 신민당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홍천/횡성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이응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유재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러나 원래 당선된 적도 있었고 홍천군 출신 인물이며 미약하나마 있는 자민련의 고정 지지층 5%가 합쳐져 30%대의 높은 득표율을 올렸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자유당 이응선 후보에 설욕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최연소 당선자였다. 제14대 대통령 선거 직후 김영삼 정권이 통일국민당 국회의원을 빼가는 와중에서도 통일국민당에 잔류하였고, 해당 인연으로 배우 강부자는 조일현의 후원회장을 역임하였다. 1993년 통일국민당 정책위원회 의장에 임명되었다. 1994년 통일국민당이 신정치개혁당과 합당하여 신민당이 되자 신민당 대변인에 임명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홍천/횡성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이응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천년민주당 유재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그러나 원래 당선된 적도 있었고 홍천군 출신 인물이며 미약하나마 있는 자민련의 고정 지지층 5%가 합쳐져 30%대의 높은 득표율을 올렸다.
2.1.1. 잠깐의 리즈시절 [편집]
2.1.2. 다시 낙선 [편집]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황영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1년 재보궐선거에서 강원도지사 후보로 출마하려고 했으나 최문순에게 밀렸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황영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민주통합당,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강원도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1.3. 새 지역구에서 [편집]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강원도 홍천군-인제군-양구군-화천군-철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황영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의 피해자 중 한 명.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예비후보로 등록한 선거구가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 을로 획정되면서 기반인 홍천군이 홍천군·횡성군·영월군·평창군으로 떨어지면서 컷오프되었다. 문제는 기존 태백시·횡성군·영월군·평창군·정선군에 공천을 받은 원경환[2]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동해시·태백시·삼척시·정선군이 아닌 홍천군·횡성군·영월군·평창군을 선택하면서 민주당 당적으로는 출마가 불가능해졌다. 이번 선거구 획정의 가장 큰 피해자.
어찌보면 강원도의 잦은 선거구 개편에 따른 피해를 두번 연속으로 보게 된 셈이다.
결국 공천 배제에 반발해서 무소속 출마를 하였으나 미래통합당 유상범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원경환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특히 원경환 후보 입장에서는 단일화만 되었다면 해볼만한 구도였기 때문에 원경환 조일현 두명 모두에게 패배가 뼈아팠다. 더욱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무소속 낙선자들의 복당은 절대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향후 정치적 미아(?)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차기 총선에서 당선될 가능성은 낮으나, 많은 자치군으로 구성된 지역구인만큼 소지역주의가 발동되어 10%대의 득표율을 득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선에서 군수직[3]이나 도의원, 군의원으로 체급을 낮추면 당선될지도 모르겠으나, 국회의원 재선한 인물이 체급을 낮추는 것도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체급을 낮추어 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낮다고 할 수 있다.???/...: 우린 뭐가 되냐?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예비후보로 등록한 선거구가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 을로 획정되면서 기반인 홍천군이 홍천군·횡성군·영월군·평창군으로 떨어지면서 컷오프되었다. 문제는 기존 태백시·횡성군·영월군·평창군·정선군에 공천을 받은 원경환[2]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동해시·태백시·삼척시·정선군이 아닌 홍천군·횡성군·영월군·평창군을 선택하면서 민주당 당적으로는 출마가 불가능해졌다. 이번 선거구 획정의 가장 큰 피해자.
어찌보면 강원도의 잦은 선거구 개편에 따른 피해를 두번 연속으로 보게 된 셈이다.
결국 공천 배제에 반발해서 무소속 출마를 하였으나 미래통합당 유상범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원경환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특히 원경환 후보 입장에서는 단일화만 되었다면 해볼만한 구도였기 때문에 원경환 조일현 두명 모두에게 패배가 뼈아팠다. 더욱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무소속 낙선자들의 복당은 절대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향후 정치적 미아(?)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차기 총선에서 당선될 가능성은 낮으나, 많은 자치군으로 구성된 지역구인만큼 소지역주의가 발동되어 10%대의 득표율을 득표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선에서 군수직[3]이나 도의원, 군의원으로 체급을 낮추면 당선될지도 모르겠으나, 국회의원 재선한 인물이 체급을 낮추는 것도 이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체급을 낮추어 지선에 출마할 가능성이 낮다고 할 수 있다.
3. 소속 정당 [편집]
4. 선거 이력 [편집]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85 |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원주·홍천·횡성·원성) | 10,248 (5.32%) | 낙선 (5위) |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홍천) | 8,667 (19.14%) | 낙선 (2위)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홍천) | 21,601 (52.77%) | 당선 (1위)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홍천·횡성) | 18,876 (30.89%) | 낙선 (2위) | 강원 지역 최소표 차 낙선자 |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홍천·횡성) | 18,812 (31.35%) | 낙선 (3위) |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홍천·횡성) | 24,194 (43.13%) | 당선 (1위) | 강원 지역 최소표 차 당선자 |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홍천·횡성) | 21,896 (41.43%) | 낙선 (2위) |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홍천·횡성) | 27,856 (48.19%) | 낙선 (2위) | ||
2016 | 35,225 (34.99%) | 낙선 (2위) | |||
2020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강원 홍천·횡성·영월·평창) | 13,699 (11.89%) | 낙선(3위) |
5. 둘러보기 [편집]
[1]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근로농민당 소속을 출마한 선거에서는 생일이 1955년 2월 12일로 선관위에 등재되어 있다.[2] 정선군 출신이지만 고등학교를 평창군에서 나왔다.[3] 홍천군에서 24.89%를 득표한 만큼 가능성이 높지 않으나 군수는 지역에서 인망 높은 인사를 뽑는 경우가 높은 만큼 가능성이 낮다고 할 수 없다.[4] 신정치개혁당과 신설 합당[5] 자유민주연합에 흡수 합당(법적으로는 신설)[6] 당내 노선 갈등[7] 민주당과 신설 합당[8] 신당 합류[9] 민주당과 신설 합당[10]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1] 새정치연합과 신설 합당[12] 총선 공천 불복[13] 최연소 당선자. 1994년 신민당으로 합당. 1995년 자유민주연합에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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