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응삼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조응삼(趙應三)
본관
생몰
충청도 충주목 금목면 유촌리
(현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1]
사망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의병장.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조응삼은 1875년 8월 14일 충청도 충주목 금목면(현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7년 8월 23일 정봉준 의병대에 가담했으며, 13도 연합 의진이 구성되고 있을 때 1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총기를 가지고 지평, 원주 등지에서 9월 중순까지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다. 그가 체포된 직후 그의 부대는 이인영의 연합 의진 휘하에 귀속되어 서울 진공 작전에 가담했다.

조응삼은 체포된 뒤 공주 지방 재판소로 압송되어 폭동죄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공주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56년 6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조응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인근의 삼봉리·유포리와 함께 한양 조씨 집성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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