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역해전도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정말 그림처럼 입었나? [편집]
조선군이 상당히 잘 무장하고 꽤 멋있게 그려져서 이 그림을 맹신하는 경우가 있지만,[1] 그림의 제작시기가 이미 임란이 지난지 300여년을 훌쩍 지나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그림이 정확하다고 말 할 수는 없다. 좁은 배 위에서 중갑을 입고 활동하기는 굉장히 불편하며, 물에 빠지면 바로 용궁으로 직행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바닷바람 맞는 환경에서 철제 갑옷을 하나하나 유지관리하는 것은 지극히 번거롭기 때문이다. 두정갑보다는 차라리 가죽찰갑이 더 현실성있다. [2] 이른바 칠천량 해전에서의 승리를 극대화하기 위한 표현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가 저렇게 짱짱 쎈 조선 수군을 개발랐다" 라는 자뻑이 들어가 있는 셈. 애초에 임란 당시에는 두정갑보다는 찰갑이나 쇄자갑, 경번갑 등이 주류 갑옷이었을 것으로 보는 게 정설이고.
이 그림에 나오는 일본 전투함이 대포를 대들보에 밧줄로 매달고 쏘는 묘사 때문에 한동안 일본 배는 구조강도가 약해서 포를 갑판에 설치할 수 없다!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는데, 최근 신재호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은 화가가 사료를 오독해서 잘못 그린 것이고, 판옥선에 비해 약하다는 평을 받기는 해도 일본 배의 구조강도가 대포 한두 문의 반동도 못 견딜 정도로 약하지는 않았으며, 대포도 정상적으로 갑판에 거치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고증적으로는 깔려면 끝도 없이 깔 수 있는 그림이다. 당시 조선군에는 거의 쓰이지 않은 무기(불랑기포, 수노기 등)이 대표 무기로 그려진 점, 조선군 배의 목재 연결방식이 일본식으로 그려진 점, 화살집이나 저고리가 18~19세기의 방식인 점, 조선군이 신기전을 활로 쏘는 점, 육군 병종인 팽배수가 수군에 있고 환도가 아닌 검을 들고 싸우는 점 등등.
이 그림에 나오는 일본 전투함이 대포를 대들보에 밧줄로 매달고 쏘는 묘사 때문에 한동안 일본 배는 구조강도가 약해서 포를 갑판에 설치할 수 없다!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는데, 최근 신재호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은 화가가 사료를 오독해서 잘못 그린 것이고, 판옥선에 비해 약하다는 평을 받기는 해도 일본 배의 구조강도가 대포 한두 문의 반동도 못 견딜 정도로 약하지는 않았으며, 대포도 정상적으로 갑판에 거치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고증적으로는 깔려면 끝도 없이 깔 수 있는 그림이다. 당시 조선군에는 거의 쓰이지 않은 무기(불랑기포, 수노기 등)이 대표 무기로 그려진 점, 조선군 배의 목재 연결방식이 일본식으로 그려진 점, 화살집이나 저고리가 18~19세기의 방식인 점, 조선군이 신기전을 활로 쏘는 점, 육군 병종인 팽배수가 수군에 있고 환도가 아닌 검을 들고 싸우는 점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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