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백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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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曹)나라 25대 국군 조백 양 曹伯 陽 | |||
희(姬) | |||
조(曹) | |||
양(陽) | |||
아버지 | 조정공(曹靖公) 희로(姬露)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487년 | |
재위 기간 | 음력 | 기원전 501년 ~ 기원전 487년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2.1. 공손강(公孫強)을 만나기 전 [편집]
2.2. 공손강을 만난 뒤 [편집]
2.3. 뻘짓 후 멸망 [편집]
조백 양 14년(기원전 488년), 조백 양이 진(晉)나라와의 국교를 끊었다.[3] 그리고 송나라를 쳤다. 이에 송나라의 군주 송 경공은 조나라를 포위했다. 조백 양이 진(晉)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는데, 진(晉)나라가 조나라가 진(晉)나라를 배신한 일을 들어 구원병을 단 1명도 보내지 않았다. 오직 정나라 만이 진(晉)나라의 눈치를 보다가 구하러 왔을 뿐이다.
조백 양 15년(기원전 487년) 봄, 송나라 군이 조나라를 칠 때 송군이 철수하려 했다. 그러자 저사 자비가 달아나려 하자 조나라 사람들은 그를 모욕했다. 그러자 그것이 오히려 저사 자비를 달아나지 않게 만들었다. 송 경공이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해 조나라를 쳐서 끝내 조나라를 멸하고, 조백 양과 공손강을 잡아다가 송나라에서 참수해 최후를 마쳤다.
조백 양 15년(기원전 487년) 봄, 송나라 군이 조나라를 칠 때 송군이 철수하려 했다. 그러자 저사 자비가 달아나려 하자 조나라 사람들은 그를 모욕했다. 그러자 그것이 오히려 저사 자비를 달아나지 않게 만들었다. 송 경공이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노해 조나라를 쳐서 끝내 조나라를 멸하고, 조백 양과 공손강을 잡아다가 송나라에서 참수해 최후를 마쳤다.
[1] 군주가 사냥을 하면 많은 물자 비용도 비용이지만, 집을 허는 등 온갖 뻘짓을 하고 보상이 없기 때문에 백성들이 싫어하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어느 정도는 참작 가능한게, 춘추시대 까지만 해도 군사 훈련의 일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2] 삼국지에 나오는 요동군 태수 공손강(公孫康)과는 다른 사람이다.[3] 공손 강의 계책도 있었겠지만, 오나라가 뜨고, 실권자들이 뇌물이나 먹으면서 제대로 패업을 행사하지 않는 등의 원인도 있었다. 물론 결과는 처참했는데, 이유는 후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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