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중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출생 | |
사망 | |
본관 | |
이명 | 정해영(鄭海永)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정화중은 1888년 7월 7일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7일 고향에서 김승림(金升林)·여규병·여구일·여중선(呂中仙)·박두업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영동 무주간 도로 부역에 나온 수백명의 군중을 규합하여 학산 주재소를 점거하고 기물을 파괴한 후 임원들이 심으려고 실어다 놓은 뽕나무 수만 주를 불태워 항일의 기세를 높혔다. 그는 다시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절규하면서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출동한 일경에 붙잡혔다.
1919년 6월 1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영동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1년 8월 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정화중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919년 6월 1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영동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1년 8월 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정화중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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