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신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 정제신(鄭濟莘) |
이명 | 정제화(鄭濟華) |
자 | 준백(俊伯) |
본관 | |
생몰 |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정제신은 1886년 4월 23일 경기도 광주유수부 오포면(현 광주시 오포읍 추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7일 새벽 1시경 광주군 오포면 고산리 주민 40여명과 함께 횃불을 들고 인근 야산에 올라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하였다. 이어 오전 11시경 오포면에 집결한 시위 군중들과 합류하여 시위대는 1,000여명에 달했으며, 이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오포면사무소와 광주군청까지 시위행진을 하던 중 긴급 출동한 일본 경찰의 무력 탄압에 제지되어 곧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는 출옥 후에도 격렬히 항거하였으나 일본 경찰의 강압적 핍박과 박해가 지속되자 자결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그는 1919년 3월 27일 새벽 1시경 광주군 오포면 고산리 주민 40여명과 함께 횃불을 들고 인근 야산에 올라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시작하였다. 이어 오전 11시경 오포면에 집결한 시위 군중들과 합류하여 시위대는 1,000여명에 달했으며, 이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오포면사무소와 광주군청까지 시위행진을 하던 중 긴급 출동한 일본 경찰의 무력 탄압에 제지되어 곧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는 출옥 후에도 격렬히 항거하였으나 일본 경찰의 강압적 핍박과 박해가 지속되자 자결하였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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