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교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정우교 Jung Woo Kyo | |
복무 | |
기간 | 1980년 ~ 2015년 |
임관 | 학사 6기 |
최종 계급 | |
최종 보직 | |
주요 보직 | |
1. 개요 [편집]
대한민국 육군의 전 군인.
2. 생애 [편집]
3. 여담 [편집]
이렇듯 경력만 보면 평범하게 육군 장교로서 명예롭게 전역한 평범한 군인이지만 인터넷 상에서 그가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바로 그가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총각, 즉 미혼의 장군이기 때문이다.# 2013년 진급 당시 현역 장성 가운데 총각은 그뿐이었다.
물론 건군기에는 미혼 장군이 있었다. 이종찬 장군의 경우 소장으로 진급한 뒤에 결혼했다. 당시 이종찬 장군이 육군참모총장이 되었을 때 만송 이기붕 선생이 이종찬 장군의 모친을 찾아가 일국의 총참모장이 미혼이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설득하여 결혼하게 만들었고 한다. [1] 당시엔 막 국군을 창설하고 조직을 정비하는 상황이어서 이종찬처럼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젊은 나이의 장군도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국군이 조직을 확립한 뒤에는 이런 모습은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정우교가 최초가 된 것.
거기다가 학사장교 가운데는 처음으로 공병 병과 장군이다. 공병은 진급 상한선이 높지 않은 편이라 육사 출신조차 장군으로 진급하기 힘든데 학사장교 출신으로 장군진급에 성공했다. 또한 군 조직은 아직도 보수적이기 때문에 미혼자보다 기혼자가 진급에서 유리하다. 이런 수많은 난관을 뚫고 진급했기 때문에 정 준장의 장성 진급 비결이 동자공(...)이라는 둥, 진정한 솔로부대 대장이라는 둥 하는 개드립이 흥했다.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후 총각이 장성이 된 경우는 없고 준장(진)이었던 한철용 당시 대령(육사26기)의 사례가 있다. 준장 진급이 확정된 상태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총각장군이 아니라 유부남(진)장군 한 장군의 경우 준장(진) 상태로 1994년에 결혼했는데 아내가 추순삼 당시 중령(여군27기)이었다. 그래서 준장 진급 때는 기혼자였다. 정우교 준장은 진급일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전쟁 이후 첫 총각 장군이 되었다.
물론 건군기에는 미혼 장군이 있었다. 이종찬 장군의 경우 소장으로 진급한 뒤에 결혼했다. 당시 이종찬 장군이 육군참모총장이 되었을 때 만송 이기붕 선생이 이종찬 장군의 모친을 찾아가 일국의 총참모장이 미혼이면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설득하여 결혼하게 만들었고 한다. [1] 당시엔 막 국군을 창설하고 조직을 정비하는 상황이어서 이종찬처럼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젊은 나이의 장군도 수두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국군이 조직을 확립한 뒤에는 이런 모습은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정우교가 최초가 된 것.
거기다가 학사장교 가운데는 처음으로 공병 병과 장군이다. 공병은 진급 상한선이 높지 않은 편이라 육사 출신조차 장군으로 진급하기 힘든데 학사장교 출신으로 장군진급에 성공했다. 또한 군 조직은 아직도 보수적이기 때문에 미혼자보다 기혼자가 진급에서 유리하다. 이런 수많은 난관을 뚫고 진급했기 때문에 정 준장의 장성 진급 비결이 동자공(...)이라는 둥, 진정한 솔로부대 대장이라는 둥 하는 개드립이 흥했다.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한국전쟁 이후 총각이 장성이 된 경우는 없고 준장(진)이었던 한철용 당시 대령(육사26기)의 사례가 있다. 준장 진급이 확정된 상태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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