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재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정용재(鄭容在)
이명
정용재(鄭龍在)
생몰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외가천리
사망지
안성형무소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정용재는 1883년생이며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외가천리 출신이다. 1919년 4월 1일 밤 8시경 원곡면 칠곡리의 이우석(李祐奭),홍창섭(洪昌燮)과 외가천리(外加川里)의 최은식(崔殷植),이희용(李熙龍),이근성(李根誠),이덕순(李德順) 등 주동 인물을 비롯한 시위 군중은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만세를 부르며 양성면으로 행진하였다. 이우석과 홍창섭 등은 양성주재소로 가서 일본 순사들을 끌어내 독립만세를 부르게 하고, 일제의 식민정책 수행기관인 면사무소,주재소,우편소 등을 습격,파괴하며 일본인을 축출하고자 하였다.

이 시위에 참가한 정용재는 원곡면 시위 군중 1,000여 명과 함께 행진 도중, 양성면 시위 대열과 만나 2,000여 군중이 함께 주재소로 향하였다. 주재소 앞에서 계획대로 일본 경찰을 끌어내어 만세를 부르게 하는 한편, 경찰을 앞세우고 시위 행진을 하였다. 이들은 주재소와 숙직실 등에 불을 지른 다음, 양성우편소로 가서 우편소를 파괴하고 통화 연락을 막기 위해 전신주를 없앴다. 또한 시위대는 읍내 일본인 상점을 파괴한 뒤, 양성면 사무소로 가서 호적원부를 소각하고 기물을 파괴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정용재는 수감 중 1심 재판이 열리기 전인 1919년 8월 10일 이전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정용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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