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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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일제강점기 한국의 공산주의자이다. 항일 활동을 하였다. 2019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2. 생애 [편집]
정영한은 1908년 10월 20일 지금의 전라남도 여수시 소라면 중촌2길에서 태어났다. 보통학교 5학년을 다니던 그는 중퇴를 한 후 경성 중동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2학년이 되던 때 퇴학을 당하였고 귀향을 한 후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 시절 그는 공산주의 서적들을 읽게 되면서 공산주의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고 이우적, 정령 등의 공산주의자들과 교류하게 되었다. 이후 공산주의 이론을 연구하며 공산주의 이론을 조직적으로 이루어내고 이를 통한 길을 찾아야 한다고 결심하게 되었다.[1]
1931년 11월에 그는 전라남도 여수에서 일어났던 농장 소작쟁의에 참여하였고 1932년 1월에는 전남노농협의회에 가입하였다. 1933년 5월 초 전라남도 순천읍에 있는 정병권의 집에서 정충조, 선동기와 회합을 하여 ‘조선공산당 재건 전남동맹'을 조직하고 서기국 겸 노동부 책임을 맡게되었다. 그는 조직구성원의 연락과 다른 지방 조직체와의 연락을 도모하였고 공장 및 노동자의 기본조사 및 노동조합 내에서 세포조직의 지도를 주도하였다.이들은 조선공산당 재건 활동을 위해 종종 회합을 가지고 협의를 나누었다.[2]
같은 해 8월 그는 '적기 창간 준비호'등 공산주의 문건과 유인물의 인쇄와 반포에도 참여하였다. 당시 동료가 가지고 있던 등사판 룰러가 사용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전라남도 여수의 한 보통학교에 침입해 등사판 용구 일체를 훔치기도 하였다. 이후 '적기창간호'라는 제목으로 공산주의에 관한 선언, 강령 등을 인쇄-반포하였다.[3]
그러다 1934년 3월에 일본 경찰에 의해서 체포되었고 치안유지법 위반과 출판법 위반 및 절도죄로 1935년 10월 25일 전주지방법원 형사부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루었다.[4]
3. 기타 [편집]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1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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