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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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양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영운2. 군산시 출신 독립운동가, 정순영

1. 양평군 출신 독립운동가, 정영운 [편집]

성명
정영운(鄭永雲)
생몰
사망지
경성형무소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정순영은 1878년생이며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출신이다. 그는 1907년경 임행숙(任行淑)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동료 100여 명과 함께 경기도 일대에서 활동했다. 특히 1907년 11월 1일 경기도 여주군 홍곡면 충신동 산속에서 여주경찰서 소속 순사 5명과 전투를 벌인 끝에 4명을 사살했다. 그러나 1909년 말에 일제 헌병대에게 체포되었고, 이후 1910년 2월 16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살인죄로 교수형을 언도받아 공소하였으나 1910년 3월 1일 경성공소원에서 교수형이 확정된 뒤 그해 8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정영운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 군산시 출신 독립운동가, 정순영 [편집]

성명
정영운(鄭永云)
생몰
전라북도 옥구군 서수면 서수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포장

정영운은 1898년 1월 28일 전라북도 옥구군 서수면 서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7년 10월 전북 옥구군 서수면에서 옥구농민조합 서수지부 조직에 참여하고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동년 11월 이엽사농장(二葉社農場)의 가혹한 소작료 징수에 항의하다 검거된 장태성(張台成)을 구출하기 위해 파출소를 공격하다 체포되어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9년 정영운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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