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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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정재원과 해남 윤씨 소생의 자녀 중 셋째아들이며 정약현은 정약전, 정약용, 정약종 형제의 이복형이다.[1]
정조 재위 기간 중반임 1786년에 천주교에 입교해 세례성사를 받았으며, 정약현을 제외한 형제가 모두 입교했다.[2] 그 후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의 회장으로 취임하여 청국인인 주문모 신부를 돕고 교리 요약서인 <주교요지>를 썼다.
신유박해 때 큰아들 정철상 가롤로와 함께 순교했다. 정약종이 순교할 무렵에 정약전과 정약용은 천주교를 등졌지만, 정약종은 배교를 거부했다.
순교 후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에 포함되어 시복되었다.
정조 재위 기간 중반임 1786년에 천주교에 입교해 세례성사를 받았으며, 정약현을 제외한 형제가 모두 입교했다.[2] 그 후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의 회장으로 취임하여 청국인인 주문모 신부를 돕고 교리 요약서인 <주교요지>를 썼다.
신유박해 때 큰아들 정철상 가롤로와 함께 순교했다. 정약종이 순교할 무렵에 정약전과 정약용은 천주교를 등졌지만, 정약종은 배교를 거부했다.
순교 후 2014년에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에 포함되어 시복되었다.
3. 가족관계 [편집]
4. 기타 [편집]
- 부인인 유 체칠리아와 다른 자녀인 정하상 바오로, 정정혜 엘리사벳은 박해에서 살아남아 천주교인으로 남았으나, 1839년 기해박해 때 그들도 모두 순교했다. 그래서 형제 중에서 정약종만 직계후손이 없다.[4] 한편 유 체칠리아, 정하상 바오로, 정정혜 엘리사벳은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 때 시성되었다(한국 103위 순교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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