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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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정사홍은 1875년생이며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이다. 그는 정용기의 사촌으로, 1906년경 남석인, 경주 출신 이운경(李雲景), 흥해 출신 정천여(鄭千汝), 그리고 자신의 육촌인 남석문(南錫文)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우익장을 맡았다. 그러나 경주로 진군했다가 경주 진위대 30명이 기습해와 전세가 불리해지자 의병대를 해산한 뒤 자택으로 돌아갔다. 그러던 1907년 5월, 정환직과 정용기 부자가 재차 의병을 일으키자, 그는 남석인과 함께 군사 30명을 모집하고 영천 거동사에 머물면서 정용기에게 만날 것을 청했지만 정용기가 응하지 않았다.
이후 그는 남석인과 함께 의병대를 거느리고 청송, 흥해 등지의 민가를 돌아다니면서 군자금을 모금했다. 그러나 1907년 6월 남석인과 심한 갈등을 빛은 그는 남석인에게 포군 20명을 맡기고 청송 보현산으로 보냈고, 자신은 구례군 지리산에서 활동했다. 1908년 7월 3일 구례군 내산면 상원동에서 구례 주둔 일제 군경과 전투를 벌이다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정사홍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후 그는 남석인과 함께 의병대를 거느리고 청송, 흥해 등지의 민가를 돌아다니면서 군자금을 모금했다. 그러나 1907년 6월 남석인과 심한 갈등을 빛은 그는 남석인에게 포군 20명을 맡기고 청송 보현산으로 보냈고, 자신은 구례군 지리산에서 활동했다. 1908년 7월 3일 구례군 내산면 상원동에서 구례 주둔 일제 군경과 전투를 벌이다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정사홍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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