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붕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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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정붕익은 1872년 평안도 덕천군 금성면 연당리(현 평안남도 덕천시 남양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1 운동 이후 덕천 지역의 한학자 정진원·정계록·백낙현(白樂賢) 등과 함께 평안도 각지를 돌아다니며 다수의 청년을 규합하여 만주에 본부를 두고 있는 대한독립단의 덕천지단을 조직, 이에 가입시키고 군자금을 모집하며 독립사상을 선전하였다. 1920년 9월경 그는 박승혁의 권유로 덕천지단의 재무감에 취임하여, 지역 유지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군자금 수백여 원을 모집하여 박승혁에게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21년 6월 14일경 동지들과 함께 덕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21년 10월 26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 공소했으나, 1922년 2월 2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201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그는 1919년 3.1 운동 이후 덕천 지역의 한학자 정진원·정계록·백낙현(白樂賢) 등과 함께 평안도 각지를 돌아다니며 다수의 청년을 규합하여 만주에 본부를 두고 있는 대한독립단의 덕천지단을 조직, 이에 가입시키고 군자금을 모집하며 독립사상을 선전하였다. 1920년 9월경 그는 박승혁의 권유로 덕천지단의 재무감에 취임하여, 지역 유지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군자금 수백여 원을 모집하여 박승혁에게 제공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1921년 6월 14일경 동지들과 함께 덕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21년 10월 26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언도받고 공소했으나, 1922년 2월 2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201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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