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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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鄭)나라 11대 국군
목공
穆公
희(姬)
정(鄭)
란(蘭)
아버지
정문공(鄭文公) 희첩(姬踕)
어머니
연길(燕姞)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606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627년 ~ 기원전 606년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중국 춘추시대 정(鄭)나라의 제11대 군주. 정문공의 아들.[1] 어머니는 연길. 정영공, 정양공의 아버지. 춘추시대의 유명한 여인 하희의 아버지다. 어린 시절 진(晉)나라의 대부 노릇을 하다가 진 문공의 도움으로 세자가 되고 결국 정나라의 백작에 오른 인물이다.

13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이 중 장남인 이와 차남인 견은 정영공정양공이 되었다. 나머지 아들들도 일가를 이루어 이들 중 7명의 자손이 칠목이라 불리며 후일 정나라의 정치를 좌우하게 된다.

2. 생애 [편집]

정 목공 원년(기원전 627년), 봄 진목공(秦穆公)은 맹명시, 백을병, 서걸술을 보내 정나라를 치게 했는데, 정나라 상인인 현고가 진(秦)나라의 병사를 위로하며 정나라에 대비가 있음을 알리니, 맹명시 등이 이끄는 진(秦)나라 군대는 활나라를 쳐서 멸망시켜 버렸다. 이때 진(晉)나라 군대의 공격을 받아 맹명시, 백을병, 서걸술만 살아남는 비참한 패배를 당했다.

정 목공 8년(기원전 620년), 초목왕은 대장 투월초, 부장 위가를 파견해 정나라를 치니 정나라도 공자 견, 공자 방, 악이를 보내 싸웠으나 패하여 3명의 장수가 사로잡혀 압박을 느껴 초나라와 강화했다. 그리고 진(陳)나라, 채나라와 함께 겨울 10월에 궐락 땅에서 회맹했다. 그리고 초나라와 함께 송나라를 쳤다.

정 목공 15년(기원전 613년), 초 목왕이 죽고 그 아들인 초장왕(楚莊王)이 즉위했다.

정 목공 17년(기원전 611년), 초 장왕이 정나라에게 송나라를 치게 했는데, 그 이유는 공물을 바치지 않은 죄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송나라는 초나라에 굴복했다.

정 목공 18년(기원전 610년), 진(晉)나라의 상국 조돈(趙盾)이 송나라 공자 포가 형 송소공을 죽이고 공작이 되자 순림보를 보내 정나라, 위나라, 진(陳)나라와 함께 송나라를 쳤다. 그리하여 송문공[2]이 화원(華元)을 보내 강화했다. 8월 진(晉)나라는 송, 제, 위, 진(陳), 허, 조나라와 함께 회맹했는데, 장소는 정나라의 호 땅이었다.

정 목공 22년(기원전 606년), 초 장왕은 진나라와 친한 정나라를 쳤다. 10월 정 목공이 죽고 그 아들인 희이가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정 영공이다.

[1] 서자다.[2] 공자 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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