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린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정도린(鄭道隣)
이명
정도린(鄭道燐)
생몰
함경남도 덕원부 중면 양촌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목차
1. 개요2. 생애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정도린은 1900년 2월 3일 함경남도 덕원부 중면 양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9월 23일 김상익(金相翊), 남상빈, 조병철(趙秉喆), 김병륜(金秉綸), 이용훤(李容暄), 서원태, 이용구, 최종현(崔鍾泫), 최종빈(崔鍾濱), 김연희(金演熙), 송일봉 등과 함께 함경남도 원산부 장촌동 장춘교 부근에서 창가 <한양가>를 부르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원산의 독립만세운동을 이끌었고, 몰려드는 수백 명의 군중을 지휘하였다.

정도린 등은 “경찰관 파출소를 도괴하자”,“순사를 살해하고 일본인을 추방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남산교를 넘고 공립보통학교(公立普通學校) 앞을 지나 극장 동낙좌(同樂座) 부근을 거쳐 북촌동 시장, 경찰관 파출소 방면 일대로 압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는 북촌동·장촌동의 두 경찰관 파출소, 원산 우편소 및 부근의 일본인 상점 십 수 개소에 돌을 던지기도 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0년 10월 13일 구류되어 1921년 2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정도린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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