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찬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 정기찬(鄭奇贊) |
이명 | 정기찬(鄭基贊, 鄭基燦), 정광서(鄭光瑞) |
생몰 | |
사망지 | 대구형무소 |
위패 |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 |
추서 | 건국훈장 독립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정기찬은 1880년생이며 전라남도 보성군 봉덕면 마상리 출신이다. 그는 보성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1908년 2월 안규홍이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가담하여 포군십장(砲軍什將)·기군장(起軍將) 등을 맡았다. 이 후 보성·순천·동복(同福)·장흥 등지에서 일본 군경에 항전하였다.
1908년 5월 의병의 활동을 밀고하던 보성군 봉덕면 법화촌에 거주하는 일진회 회원 염영화(廉永化)를 처단했으며, 양민의 재물을 탈취하는 순천군 낙서면 상고리에 거주하는 일진회원 이용서(李用西)를 참살했다. 또한 분파소나 재무서, 군경 숙소 등을 공격했으며, 일본군경을 비롯한 일본 농어민, 친일세력 등을 급습하였다.
그러나 1909년 9월 19일 광주경찰서에 체포된 그는 1910년 3월 29일 광주재판소에서 폭동·살인죄로 교수형을 언도받았고 공소했으나 6월 2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고, 1910년 7월 18일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정기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
1908년 5월 의병의 활동을 밀고하던 보성군 봉덕면 법화촌에 거주하는 일진회 회원 염영화(廉永化)를 처단했으며, 양민의 재물을 탈취하는 순천군 낙서면 상고리에 거주하는 일진회원 이용서(李用西)를 참살했다. 또한 분파소나 재무서, 군경 숙소 등을 공격했으며, 일본군경을 비롯한 일본 농어민, 친일세력 등을 급습하였다.
그러나 1909년 9월 19일 광주경찰서에 체포된 그는 1910년 3월 29일 광주재판소에서 폭동·살인죄로 교수형을 언도받았고 공소했으나 6월 2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고, 1910년 7월 18일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정기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국립서울현충원 무후선열에 그를 기리는 위패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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