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정요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貞觀政要

목차
1. 개요2. 평가3. 비판4. 바깥고리

1. 개요 [편집]

당나라전성기를 이끌었던 당태종23년에 걸친 치세 동안 위징 등 신하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책이다. '정관(貞觀)' 자체가 당태종 시기의 연호다.[1] 당태종 사후 약 50년 뒤 오긍이라는 역사가가 정리, 편찬했다.
동으로 거울을 만들면 의관을 단정히 할 수 있고, 고대 역사를 거울삼으면 천하의 흥망과 왕조 교체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기의 득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오래 된 책들이 다들 그렇듯이 판본이 여러 개이고 그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것은 대체로 명나라 때 정리된 판본.

기본적으로 제왕학 서적이지만, 당나라 초기의 사회 제도와 문화를 이해하는 사료로서의 성격도 가진다.

2. 평가 [편집]

등장 인물 자체가 막상막하급 먼치킨들인 데다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주로 다루고 있어 동아시아 제왕학바이블이자 끝판왕이라고 불린다. 덕분에 동양 세계에서는 국왕과 신하들의 필독서였고 그만큼 애독한 사람들도 많다. 간단히 예를 들어 보자면...

사실 제대로 된 동아시아 국가의 왕이나 군주치고 읽어 보지 않은 이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3. 비판 [편집]

국가주의적 요소가 제법 들어있고 유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에 유학자들 가운데에서는 대학연의가 차라리 낫다는 주장도 나왔다.

4. 바깥고리 [편집]

[1] '정요(政要)'는 '정(政)치의 요(要)체'를 의미한다.[2] 평소 책읽기를 좋아하고 어느 책이든 닥치는대로 읽지만 왕통을 계승할 수 없는 충녕대군에게 안쓰러움을 느낀 태종은 왕실의 후계를 자신처럼 유혈사태를 겪을 일 없이 적장자인 양녕대군에게 곱게 물려주고자 책벌레 충녕을 최대한 정치와 먼분야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했는데, 그 대표적 일환이 바로 정관정요를 압수 및 금지하는 것이었다. 동아시아에서 정관정요가 제왕학의 교과서이다 보니 가장 대표적인 정치서적인 정관정요만큼은 못읽게 만들었던 것. 하지만 결국 큰형이 폐세자되어 새 세자로 책봉되고 왕이 되면서는 세종 역시 정관정요를 읽고 이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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