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익대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생년 미상으로 무과에 급제한 남인이다.
경신환국이 있은 후, 1682년 (숙종 8) 봄, 김익훈과 김석주가 남인을 끝장낼 목적으로 허새(許璽), 허영(許瑛), 유명견(柳命堅) 등이 반역을 하도록 계략을 꾸민 뒤 오정위의 서녀를 첩으로 둔 김환을 시켜서 정보를 빼내오게 했다. 또 전익대를 협박해 반역 사실을 자백하도록 했다.
하지만 전익대는 계속해서 반역을 부인했고, 또 서인 내부의 소장파인 한태동(韓泰東)·조지겸(趙持謙) 등이 이를 반대하며 서인 내부에서도 논란이 발생했으며 김익훈 등을 역처벌하라는 탄핵 여론이 나타났다.
한편 전익대는 처형되었다. 그런데 허새의 옥사가 김익훈과 김석주 등이 남인을 몰살시키기 위해 일을 키운 것으로 밝혀지면서 서인 내부에서는 의견이 갈라졌다. 소장파들 사이에서 당은 다르지만 허위 날조로 상대방을 말살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나오게 된다. 이때 송시열은 처음에는 김익훈의 처벌을 주장하였지만 한성으로 상경한 뒤 서인 노장파(노론)의 의견을 듣고 의견을 바꿔 결국 처벌을 반대하며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되게 되었다.
경신환국이 있은 후, 1682년 (숙종 8) 봄, 김익훈과 김석주가 남인을 끝장낼 목적으로 허새(許璽), 허영(許瑛), 유명견(柳命堅) 등이 반역을 하도록 계략을 꾸민 뒤 오정위의 서녀를 첩으로 둔 김환을 시켜서 정보를 빼내오게 했다. 또 전익대를 협박해 반역 사실을 자백하도록 했다.
하지만 전익대는 계속해서 반역을 부인했고, 또 서인 내부의 소장파인 한태동(韓泰東)·조지겸(趙持謙) 등이 이를 반대하며 서인 내부에서도 논란이 발생했으며 김익훈 등을 역처벌하라는 탄핵 여론이 나타났다.
한편 전익대는 처형되었다. 그런데 허새의 옥사가 김익훈과 김석주 등이 남인을 몰살시키기 위해 일을 키운 것으로 밝혀지면서 서인 내부에서는 의견이 갈라졌다. 소장파들 사이에서 당은 다르지만 허위 날조로 상대방을 말살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나오게 된다. 이때 송시열은 처음에는 김익훈의 처벌을 주장하였지만 한성으로 상경한 뒤 서인 노장파(노론)의 의견을 듣고 의견을 바꿔 결국 처벌을 반대하며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되게 되었다.
3. 둘러보기 [편집]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