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규호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1. 소개 [편집]
국카스텐에서 리드 기타를 맡고 있으며, 최연장자이다. 동시에 유일한 기혼자. 꽃무늬 기타가 인상적이다.
2. 상세 [편집]
라이브 공연에서는 이펙터를 활용하여 굉장히 다양한 소리를 낸다. 공연에선 매우 격정적인 다른 멤버들과 달리 그 자리에서 기타를 치는데, 'PULSE' MV의 메이킹 영상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는 이펙터 컨트롤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트위터에 무대 위의 전규호 사진이 올라온 적이 있는데, 저걸 어떻게 다 하나 싶을 정도로 어마무시하게 많은 이펙터들이 있다.[3]
메인 이펙터는 Roland의 기타 신디사이저 VG99[4]. 기타는 더 컴 시절이나 국카스텐 극초기에는 액시스 스포트 모델을 사용했고 현재는 지인이 만들어준 커스텀 액시스 스포트[5]와 펜더의 스트라토캐스터 HSS 모델에[6] GK-3 픽업을 연결하여 사용한다. 다른 장비들은 영상을 참조하자.
처음에 인터넷에서 멤버를 구인한다는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만한 글을 보고 하현우와 이정길의 합주를 봤는데, 워낙에 개판이라 화가 나서 그냥 집에 가버렸다고 한다. 나중에는 하현우와 이정길의 패기와 열정에 자기가 가르치면서 밴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천둥벌거숭이의 셰프 하현우와 이정길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참고로 전규호는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주최하는 Thrash the wall G3에 기타리스트로 무대에 오른 만큼 실력이 확실한 기타리스트이며, 가입 당시에도 하현우가 '정말 잘 치는 사람이 왔다.'라고 할 정도. 국카스텐의 보이지 않는 리더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정길과 하현우의 합주가 엉망이었을 때 일일이 기타를 가르치고, The c.o.m의 해체 후에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만 모여서 음악을 하자고 한 것도 전규호였다. 그래서 강원도에서 합숙을 하며 '거울' 등의 명곡을 만들기도 했다. 전규호가 없었다면 국카스텐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현우는 공연 시작 전에 기자간담회가 있었던 2016년 08월 21일자 공연에서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알려드리겠다고 운을 떼며, 전규호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색깔이 강한 기타리스트라고 소개했다. 앞으로 10년간 이분의 기타의 형태와 질감과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타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하현우가 밝힌 바로는 본래 굉장한 테크니션이었다고 한다. 본인 역시도 하드락을 좋아하고,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로 슬래쉬를 언급하는 걸 보면 속주를 즐기는 편인 듯하다. 그런데 국카스텐의 음악에선 그 정도의 테크닉을 쓸 일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이펙터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고 절제력이 있어 현재는 국카스텐의 음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로 그 정도의 테크닉이 아니어도 국카스텐 곡 중에서 속주가 있는 곡이 많이 있다...
1집 때까지는 이정길과 함께 코러스를 담당했었다.[7]
메인 이펙터는 Roland의 기타 신디사이저 VG99[4]. 기타는 더 컴 시절이나 국카스텐 극초기에는 액시스 스포트 모델을 사용했고 현재는 지인이 만들어준 커스텀 액시스 스포트[5]와 펜더의 스트라토캐스터 HSS 모델에[6] GK-3 픽업을 연결하여 사용한다. 다른 장비들은 영상을 참조하자.
처음에 인터넷에서 멤버를 구인한다는
참고로 전규호는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주최하는 Thrash the wall G3에 기타리스트로 무대에 오른 만큼 실력이 확실한 기타리스트이며, 가입 당시에도 하현우가 '정말 잘 치는 사람이 왔다.'라고 할 정도. 국카스텐의 보이지 않는 리더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정길과 하현우의 합주가 엉망이었을 때 일일이 기타를 가르치고, The c.o.m의 해체 후에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만 모여서 음악을 하자고 한 것도 전규호였다. 그래서 강원도에서 합숙을 하며 '거울' 등의 명곡을 만들기도 했다. 전규호가 없었다면 국카스텐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현우는 공연 시작 전에 기자간담회가 있었던 2016년 08월 21일자 공연에서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알려드리겠다고 운을 떼며, 전규호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색깔이 강한 기타리스트라고 소개했다. 앞으로 10년간 이분의 기타의 형태와 질감과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타에 관한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하현우가 밝힌 바로는 본래 굉장한 테크니션이었다고 한다. 본인 역시도 하드락을 좋아하고,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로 슬래쉬를 언급하는 걸 보면 속주를 즐기는 편인 듯하다. 그런데 국카스텐의 음악에선 그 정도의 테크닉을 쓸 일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이펙터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고 절제력이 있어 현재는 국카스텐의 음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로 그 정도의 테크닉이 아니어도 국카스텐 곡 중에서 속주가 있는 곡이 많이 있다...
1집 때까지는 이정길과 함께 코러스를 담당했었다.[7]
3. 활동 [편집]
- 윤미래 With 타이거 JK & 비지 - Angel(2014년 12월 8일, 디지털싱글)의 기타 세션으로 참여했다.
- 방송 : EBS 스페이스 공감 (2010년, 640회)[8]
4. 기타 [편집]
- 굉장히 손재주가 많다. 포장마차 천둥벌거숭이를 열어서 음식을 팔기도 하고, 이펙터를 스스로 개조하기도 하는 등 요리나 기계 및 물건 제조하는 것을 보면 손재주가 좋다는 걸 알 수가 있다. 마리텔에 나와서도 기타를 연주하기보다 요리
이모를 하거나 공기청정기를 만들었다. 기타 잡은 시간보다 무엇을 만드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말하기로, 손이 굉장히 작은 편이라고 한다. 웬만한 초등학생들보다 작고, 기타리스트 중에서 자기보다 손 작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 타애타콘서트 도중에 공개 프로포즈했다. 손편지를 읽어 주었는데 사실 반은 애드립이었다고 한다. 2015년 12월 19일 있었던 단독 콘서트에서 둘째를 가졌다고 밝혔다.
더불어 하현우의 말에 의하면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것 같다
- 2016년 7월 8일경, 아내가 둘째 한결을 출산했다. 둘째 아들인 한결이가 아직 태어나기 전 스팸 라디오에서 말하기를, 둘째는 딸이었으면 했는데 아들이여서 딸은 이제 포기했다고 한다. 이에 김기범이 셋째를 가져보는 것을 권유하자 "그럼 80살까지 일해야 한다"며 어이없어한 것은 덤.[10] 그리고 2013년 결혼식 당시 국카스텐의 나머지 멤버들이 축가를 불러주었는데 가사가 매우 재밌다.
- 국카스텐의 매니저가 전규호에 관한 일화 중 하나를 SNS에서 말하기를, 그의 집으로 놀러 가면 가축 사육하듯이(...) 먹이다가 마지막으로 국수 1인분만 먹고 가라면서 소면 6인분을 냄비에 넣는다고 한다.
손 큰 이모님위의 손재주가 많다는 언급대로 요리도 잘하는 것 같다.
[1] 정식 음원 발매 기준. 밴드 활동으로 치면 국카스텐의 전신격 밴드인 뉴 언발란스가 결성되어 활동한 2001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만 김기범은 국카스텐이 결성된 이후인 2008년부터 합류했다.[2] 2021년 2월 16일 기준[3] 파일:전규호 이펙터.jpg[4] 백업용으로 한 대가 더 있다.[5] 이 기타가 꽃무늬 기타이다. 팬들 사이에서는 자개기타 등으로 불리며 바디의 꽃잎과 헤드, 12프렛에 국카스텐의 로고가 그려져 있다.[6] 손에 땀이 많아 메이플 지판을 쓰면 손이 미끄러져서 넥을 교체했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픽업도 일반 스트라토캐스터와는 다른 픽업을 사용한다.[7] '꼬리', 'Limbo'에서 확성기로 코러스를 했었다꼬리1,꼬리2,Limbo, 이정길과 함께 확성기 없이 '가비알' 코러스를 하기도 했다.가비알[8] 박영수, 김재하와 함께 Thrash the wall G3에 선발되었다. #1,#2. 이 방송에서 받은 평가는 아래와 같다. '전규호: 새로운 기타 사운드에 대한 실험적인 태도는 국카스텐만의 다채로운 스타일을 완성해내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탄탄한 구성의 인상적인 기타 리프를 만드는데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 국카스텐 멤버들과 함께 붉은 밭을 연주하기도 했는데, 연주 후에 보기 드물게 전규호가 남아서 멘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붉은 밭[9] 공식 채널명은 'kyo 감자랜드'.[10] 관상이나 손금을 볼 줄 아는 하현우가 멤버들의 관상이나 손금을 봐주면서 자식은 딸을 낳을지, 아들을 낳을지 얘기를 해줬는데 전규호는 무조건 아들만 낳는다는 얘기를 해줬다고 한다. 이에 전규호는 집안에 아들들이 많은 집이라고 언급했다. 집안 자체가 딸보다는 아들이 많은 집안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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