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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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편집]
2. 생애 [편집]
지금의 산서 성(山西省) 빈양(汾陽) 출신으로 16세 때 군에 종군했다. [1] 1038년에 이원호가 서하를 세우고 송나라를 공격하기 시작하자 이 당시 하급 군관이었던 적청은 서하와의 전쟁에서 선봉장이 되어서 투구 대신 구리가면을 쓰고 전장에 나가 공을 세웠다. 그 후 서하와의 크고 작은 25차례의 전투에서 활에 맞아가며 많은 성을 함락시키고 5,700명의 포로를 얻는 전공을 세웠다. 이 전공으로 계속해서 승진을 하다가 1052년에는 추밀부사에 오른다. 1053년에는 광서 장족의 수장인 농지고(儂智高)가 화남(華南)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이를 평정하기 위해 적청은 다시 전선에 나서게 되었다. 여기서 크게 승리하여 반란을 진압한 적청은 무인으로써는 오르기 힘든 추밀정사(樞密正使)의 지위에까지 오른다. 그러나 만년은 그렇게 행복하지 못했는데, 지나치게 빠른 출세는 조정의 의심을 사게 되었고 결국 지화(至和) 3년(1056년)에 면직, 진주장관(陳州長官)로 좌천된다. 그 뒤로도 조정의 감시가 이어졌고 이듬해 적청은 사망했다. 향년 49세였다. 죽은 후에 중서령의 벼슬이 내려지고 무양(武襄)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죽은 영웅은 필요해도 산 영웅은 필요없다.
3. 여담 [편집]
[1] 참고로 송나라 때 군인의 지위는 아주 낮아 탈영병이 나오지 않게 얼굴에다 문신을 하게 했는데 적청 역시 문신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송나라 인종 황제는 약을 써서 문신을 지울 것을 명했지만, 적청은 "이 문신 덕분에 낮은 지위의 병사들까지 격려할 수 있으니, 굳이 감출 필요는 없습니다."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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