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수(1896)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장태수(張兌秀)
이명
장태수(張台秀)
생몰
황해도 풍덕군 군북면 풍천리
(현 황해북도 개풍군 대련리)
사망지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장태수는 1896년 7월 12일 황해북도 개성군 상도면 풍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일 같은 마을에 사는 장경범(張慶範), 김순흥(金順興), 유기윤 등과 함께 전국에서 일어나는 3.1 운동에 호응하기로 결의하고 상도면과 대성면 풍덕리의 주민 3백여 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고창하면서 헌병분견대를 습격하고 전화선을 끊는 등 일련의 저항 운동을 벌이다가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후 1919년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및 전화법 위반으로 징역 3년 6개월 형을 언도받았고, 이에 항소하여 7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언도받았다. 그는 이 판결에도 불복하여 다시 고등법원에 상고했지만 10월 16일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그는 개성에서 조용히 살았고 1974년 8월 24일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장태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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