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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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장채남은 1895년 6월 8일 함경북도 부령군 청암면 반죽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2일 윤병후(尹炳厚)외 4명이 3월 31일을 기해 청암면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자 이에 찬성하고 그날 밤 장두량과 함께 부령군 청암면 직하동에 거주하는 방낙선(方洛先)의 집에서 등사판으로 '우리 민족은 민족자결 원칙에 의해서 독립을 선언한다'라는 내용의 선언문 1,000매를 인쇄하고 태극기 100여 본을 제작했다. 이튿날인 3월 23일에 윤병후에게 전달했고, 일부를 포항동 민가에 배포했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2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5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출판법 위반의 혐의가 덧붙여져 오히려 징역 1년으로 형기가 늘어났고, 출소 후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1923년 11월 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장채남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919년 4월 22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공소했지만 5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출판법 위반의 혐의가 덧붙여져 오히려 징역 1년으로 형기가 늘어났고, 출소 후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1923년 11월 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장채남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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