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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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湍郡 / Jangdan County
1. 개요 [편집]
2. 역사 [편집]
2.1. 남북분단 이전 [편집]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이곳을 차지한 후 장천성현(長淺城縣)을 설치했다.
신라가 병합한 뒤 신라 경덕왕 때 전국 지명 한화정책을 시행하면서 현대까지 이어지는 지명 장단현(長湍縣)으로 바꾸었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에 소속되었고, 광복 당시에는 10면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파주군과 이웃했고, 북쪽으로는 황해도와 이웃했다. 군청은 일제강점기 이후 장단면 도라산리(都羅山里)에 두고 있었다. 특산물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유명했던 장단콩 등이 있으며, 장단콩은 남아있는 장단 땅을 가져간 파주시의 특산물로 취급하고 있다.남북통일 이후 장단군이 부활되면 파주시는 장단콩 브랜드를 다시 내놓아야 한다 예성강과 임진강 사이에 있으므로 개성특별시 문화권에 속하며 개성의 교외지역이었다. 따라서 고려왕릉이나 유적도 많다.
신라가 병합한 뒤 신라 경덕왕 때 전국 지명 한화정책을 시행하면서 현대까지 이어지는 지명 장단현(長湍縣)으로 바꾸었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에 소속되었고, 광복 당시에는 10면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파주군과 이웃했고, 북쪽으로는 황해도와 이웃했다. 군청은 일제강점기 이후 장단면 도라산리(都羅山里)에 두고 있었다. 특산물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유명했던 장단콩 등이 있으며, 장단콩은 남아있는 장단 땅을 가져간 파주시의 특산물로 취급하고 있다.
2.2. 대한민국의 장단군 [편집]
1948년 실질적인 남북 분단과 함께 반토막이 나 38도선 이남의 장단·군내·진동·장남·진서 등 5개 면만으로 이루어졌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남한 땅이 된 지역도 전지역이 민통선에 포함되는 비운을 맞는다.
결국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1954년 강상면, 대강면, 장도면을 연천군에, 1963년 장남면과 군내면을 각각 연천군과 파주군에, 1972년 최종적으로 장단면, 진서면, 진동면을 파주군에 편입함으로서 남한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장단군은 '사실상' 폐지(행정기능 정지)되었다.
철도역으로는 경의선장단역, 도라산역[5]등이 지난다.
결국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1954년 강상면, 대강면, 장도면을 연천군에, 1963년 장남면과 군내면을 각각 연천군과 파주군에, 1972년 최종적으로 장단면, 진서면, 진동면을 파주군에 편입함으로서 남한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장단군은 '사실상' 폐지(행정기능 정지)되었다.
철도역으로는 경의선
2.3. 북한의 장단군 [편집]
3.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편집]
군청 소재지 | 장단면 도라산리 | |
광역자치단체 | ||
하위 행정구역 | ||
면적 | 724㎢ | |
인구 | 68,293명[6] | |
인구밀도 | 94.33명/㎢ | |
명예읍·면장 | 10석 | |
홈페이지 | ||
이북 5도 체계 하에서는 북한으로 넘어간 2개 면(대남면, 소남면)은 여전히 장단군으로 존치시키고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군 자체가 완전히 폐지된 것은 아니며, 이에 근거하여 여전히 이북5도위원회는 명예 장단군수 및 예하 10면의 명예면장을 계속 임명하고 있다.[7]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완전히 남한령으로 남아있어 실질적인 면장을 두는 것이 가능한 장단면, 군내면, 진동면 등에도 굳이 명예면장을 임명하고 있다는 것.[8] 이곳들은 비록 남한령이지만 민통선 내에 있어 일부 마을을 제외하고는 민간인이 살지 않는 곳으로, 당연히 행정수요도 거의 없기 때문에 면사무소를 따로 두지 않고 장단출장소에서 관할한다.
광복 당시 기준이며, 취소선이 그어진 지역은 현재 완전한 북한 영토인 곳이다.[9]
광복 당시 기준이며, 취소선이 그어진 지역은 현재 완전한 북한 영토인 곳이다.[9]
- 장단면(長湍面)
- 군 남단에 있는 면으로 구 명칭은 진남면(津南面)이었다. 경의선 장단역이 부설되고 근대적인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장단군청도 이 곳으로 이전하고 면 이름도 군명을 따라 1934년 개칭되었다. 동쪽과 남쪽은 임진강으로 둘러싸이고, 서쪽은 사천(砂川)이 흐른다. 장단군의 군청이 도라산리[10]에 있었으나, 시가지가 6.25 전쟁과 함께 완전 파괴되고 비무장지대로 남아있다. 철도(경의선)가 지나가는 유일한 면이며, 장단역 터는 한국령이긴 하지만 휴전선에 매우 가깝게 붙어 있다. 2020년 12월부터 덕산리도 법정리로 인정되었다.
- 소속 리 : 도라산(都羅山), 동장(東場), 노상(蘆上), 노하(蘆下),
서장(西場), 정동(井洞), 덕산(德山), 거곡(巨谷), 석관(石串), 강정(江井)
- 군내면(郡內面)
- 소속 리 : 읍내(邑內), 점원(點元), 방목(芳木), 정자(亭子), 백련(白蓮), 송산(松山), 조산(造山)
- 진동면(津東面)
- 소속 리 : 하포(下浦), 동파(東波), 서곡(瑞谷), 초(哨), 용산(龍山)
- 장남면(長南面)
- 소속 리 : 고랑포(高浪浦), 원당(元堂), 반정(伴程), 판부(板浮), 자작(自作)
- 진서면(津西面)
- 군 서쪽에 있는 면으로 개성시로 1번 국도가 통하는 바 서북 지역으로 가는 교통의 길목이다. 금릉, 어룡, 선적리가 수복되어 있고, 판문점이 위치하는 곳으로 선적리에 있다. 그 중 선적리는 2020년 12월부터 법정리로 인정받았다.
- 소속 리 :
눌목(訥木),분지(芬芝), 금릉(金陵), 어룡(魚龍),경릉(景陵),전제(田齊), 선적(仙跡),대원(大院)
- 대강면(大江面)
- 군 동쪽에 있는 면으로 대강면 우근리 425번지 소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31호이나, 미수복(북한지역소재)을 이유로 해제되었다. 포춘리가 수복되어 연천군 백학면 관할로 되어 있다.
- 소속 리 :
청정(靑廷),나부(羅浮), 포춘(浦春),우근(禹勤),독정(篤正)
- 장도면(長道面)
고읍(古邑),사시(沙是),석주원(石柱院),중(中),상(上),하(下),오음(梧陰), 항동(項洞), 매현(梅峴),두매(杜梅)
강상면(江上面)- 면소재지인 구화리는 일명 구화장(九化場)이라는 장이 서는 지역 상업 중심지였다.
- 소속 리 :
구화(九化),마성(馬城),덕적(德積),갈운(葛雲),임강(臨江),자하(紫霞),솔랑(率浪)
대남면(大南面)- 소속 리 :
위천(渭川),성곡(聖谷),석촌(石村),장좌(長佐),가곡(佳谷)
소남면(小南面)- 소속 리 :
홍화(弘化),유덕(有德),지금(知琴),박연(朴淵),두곡(斗谷)
4.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설명 [편집]
[1] 1972년 기준[2] 폐지 당시에는 황해북도 판문군[3] 장단면, 진동면, 진서면(남측)이 1972년 인근 행정구역(경기도 파주시)에 통합[4] 강상면·대강면·대남면·소남면·장도면이 1945년, 진서면(북측)이 2002년 인근 행정구역에 통합[5] 정확한 주소는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6] 1937년 호구조사[7] 비슷한 케이스로 강원도 김화군이 있다. 단 장단군은 명목상으로만 있고 남북 모두에서 사실상 폐지됐지만, 김화군은 남한만 사실상 폐지했고 북한에는 실제 행정구역이 존재한다.[8] 이 때문에 통일만 되면 다른 행정구역에 편입되었던 지역을 모두 수복하고 분단 이전의 완전체로 부활할 것이라 보는 시각이 많다.[9] 장단, 군내, 진동, 장남면 등은 완전히 또는 대부분 수복 상태이고, 진서, 대강, 장도면 등은 일부(절반 미만) 수복되어 있다.[10] 군청이 도라산리로 이전한 것은 8.15 광복 이후.[11] 장도면 전체를 가지고 따지면 월경지가 아니지만, 실질 한국령으로 남아있는 지역만 가지고 보면 월경지.[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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