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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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편집]
장관주는 1898년 11월 7일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0년 이후 홍범도, 박장호, 전덕원, 백삼규(白三圭) 등에게 군자금을 제공했으며, 1919년 3.1 운동이 발발하자 용천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했다가 체포되어 태형 90대에 처해졌다. 하지만 출옥 후에도 용산, 철산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해 임시정부에게 전달했으며, 만주에서 국내로 잠입한 홍범도, 전덕원 등을 자택에 숨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발각되어 체포된 그는 신의주 평양감옥에서 복역해야 했으며, 출옥 후에는 1920년 3월 경 대한독립군 독판부의 여순근으로부터 폭탄을 인수해 유성삼을 통해 평양기홀병원의 여행렬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이승훈, 조만식에게 자금을 조달하는 등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해외로 망명했다가 만주 안동현에서 체포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던 그는 8.15 광복 후 서울로 이주했고, 1984년 7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장관주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1984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발각되어 체포된 그는 신의주 평양감옥에서 복역해야 했으며, 출옥 후에는 1920년 3월 경 대한독립군 독판부의 여순근으로부터 폭탄을 인수해 유성삼을 통해 평양기홀병원의 여행렬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이승훈, 조만식에게 자금을 조달하는 등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해외로 망명했다가 만주 안동현에서 체포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던 그는 8.15 광복 후 서울로 이주했고, 1984년 7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장관주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1984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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