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순(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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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 지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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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2년 03월 23일 (104세) |
본관 | 인동 장씨 상장군계 |
호 | 단원(丹原) · 하원(霞原) |
재임기간 | 제18대 농림부 장관 |
제6대 국회부의장 | |
제7대 국회부의장 | |
제8대 국회부의장 |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1922년 전라북도 김제군에서 태어났다. 배재고등보통학교, 일본 도요 대학 척식산업학과를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학도병으로 끌려갔는데 중국 상하이에서 8.15 광복을 경험하였다.
귀국하여 광복군에 소위 계급으로 투신하였다. 귀국 후에는 잠시 전북중학교, 전북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육군사관학교 7특으로 대한민국 육군에 몸담았다. 이후 6.25 전쟁 시기 방첩기관 CIC특무대에 속해 보도연맹 학살사건에 깊숙히 개입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현역 장성 신분으로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63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그리고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여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전라북도 김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정당 조한백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 말부터 8년 동안 역대 최장수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공화당 중앙위원회 의장에 임명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전라북도 김제군-정읍군 선거구[1]에 출마하여 친여 무소속 김탁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제1무임소장관을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 김원기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0년 5.17 내란 이후 민주정의당 합류를 제의받았으나 거부하고 정계를 은퇴하였다. 현재는 극우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귀국하여 광복군에 소위 계급으로 투신하였다. 귀국 후에는 잠시 전북중학교, 전북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육군사관학교 7특으로 대한민국 육군에 몸담았다. 이후 6.25 전쟁 시기 방첩기관 CIC특무대에 속해 보도연맹 학살사건에 깊숙히 개입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현역 장성 신분으로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63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그리고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여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전라북도 김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정당 조한백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 말부터 8년 동안 역대 최장수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민주공화당 중앙위원회 의장에 임명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전라북도 김제군-정읍군 선거구[1]에 출마하여 친여 무소속 김탁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제1무임소장관을 역임하였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 김원기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0년 5.17 내란 이후 민주정의당 합류를 제의받았으나 거부하고 정계를 은퇴하였다. 현재는 극우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다.
3. 소속 정당 [편집]
4. 기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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