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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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복원도의 모습과 유사한, 중국 보수교의 모습 |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 19년(790) 월정교와 함께 건설되었다. 건설 당시의 이름은 '춘양교'였지만 월정교와 이름을 맞추려 했는지 일정교(日淨橋)로 개칭. 이후 언젠가부터 깨끗할 정(淨)자가 정할 정(精)자로 바뀌어 일정교(日精橋)가 되었는데, 이 이름이 조선시대와 현대까지 주로 쓰였다. 신라가 멸망한 이후에도 다리는 남아 800여 년을 버티다 16세기 초반 이전에 관리부족으로 무너졌다고 추정한다.
2017년 현재 월정교가 일종의 시범 케이스로 먼저 복원되는 중이라 그 유명세에 밀리지만, 고증 부족으로 학계에서 까이는 월정교와 달리 일정교는 부재가 훨씬 많이 남았으므로 좀더 충실히 고증할 수 있을 듯 하였으나.. 복원 조감도가 나온 이후 또다시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다리의 규모는 길이 55미터, 너비 13미터로 월정교와 비교해보면, 길이 63미터 너비 12미터인 월정교에 비해 길이는 짧지만 다리 폭은 더 넓었다고 추정한다. 상판의 높이는 5미터. 물론 같은 시기에 세트로 지어진 만큼 교각이 하나 적고 규모가 약간 다르다는 점 외에 축조 방법, 석재의 재질, 색깔, 형태는 거의 똑같다.
2002년 2월 일정교 실측조사에서 일정교 동쪽 교대(橋臺)의 석축이 월성 방면으로 100 m 남짓 이어졌음을 확인했다. 연구소 심영섭 학예연구실장은 '이 정도 규모로 축대를 쌓은 것으로 보아 남천 동편에 궁궐 등 매우 중요한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인터뷰했다. 그런데 2000년에 바로 일정교지 동쪽에서 남궁지인(南宮之印)이라고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기도 했으므로, 비록 현존 문헌에는 관련기록이 없지만 현 국립경주박물관 자리에 '남궁'이라는 궁궐이 있었으리라 학계에선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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