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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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李璜)
1. 개요 [편집]
2. 일생 [편집]
아버지 참봉(參奉) 이승렴(李承廉)과 어머니 양성이씨(陽城李氏) 충순위(忠順衛)이한(李澣)의 따님 사이에서 가정(嘉靖) 계축(癸丑) 명종(明宗 8) 1553년에 태어나셨다.
이황(李璜)은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 왜병(倭兵)이 양면(兩面)에서 서울로 침입(侵入)함에 임금의 대가(大駕)가 평안도(平安道)로 행차(行次)하시니 이황(李璜)은 백의(白衣)로 분연(憤然)히 일어나 끝 아우 직장(直長) 이순과 함께 의병(義兵)을 일으켜 죽기를 맹세하는 장사 700명을 모아 재봉(齎峰) 고경명(高敬命)과 같이 금산(錦山)에 나아가 싸웠으나 작은 수로 많은 적을 당해내지 못하고 근왕의 길을 찾아 북으로 올라가다 건재(健齎) 김천일(金千溢)과 강화에서 만나 같이 왜적(倭敵)을 소탕하고 아우와 선조(宣祖)의 행재소(行在所)를 찾아 임금을 모시었다.
1637년 인조(仁祖 15년)에 75세로 졸(卒)하니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증직(贈職)되었다.
이황(李璜)은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 왜병(倭兵)이 양면(兩面)에서 서울로 침입(侵入)함에 임금의 대가(大駕)가 평안도(平安道)로 행차(行次)하시니 이황(李璜)은 백의(白衣)로 분연(憤然)히 일어나 끝 아우 직장(直長) 이순과 함께 의병(義兵)을 일으켜 죽기를 맹세하는 장사 700명을 모아 재봉(齎峰) 고경명(高敬命)과 같이 금산(錦山)에 나아가 싸웠으나 작은 수로 많은 적을 당해내지 못하고 근왕의 길을 찾아 북으로 올라가다 건재(健齎) 김천일(金千溢)과 강화에서 만나 같이 왜적(倭敵)을 소탕하고 아우와 선조(宣祖)의 행재소(行在所)를 찾아 임금을 모시었다.
1637년 인조(仁祖 15년)에 75세로 졸(卒)하니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증직(贈職)되었다.
3. 기타 [편집]
뒤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기록되고 훈련원(訓練院) 부장(部將)에 제수(除授) 되었는데 향리(鄕里)의 장보(章甫)들이 영산사(英山祠)에 배향(配享)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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