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일(1640)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5대 이정한
6대 이홍일

도정궁 5대 사손
이홍일
李弘逸
전주(全州)
홍일(弘逸)
사안(士安)
양부
양모
정부인[A] 파평 윤씨(坡平 尹氏)
정부인[A] 청송 심씨(靑松 沈氏)
생부
이석한[3]
생모
정부인[A] 경주 김씨(慶州 金氏)
부인
정부인 기계 유씨(杞溪 兪氏)
자녀
3남 3녀
생몰
기간
목차
1. 개요2. 생애3. 사망4. 가족과 자손


1. 개요 [편집]

조선왕족 출신 문신. 도정궁 제5대 사손이자 제6대 주인이다.

2. 생애 [편집]

양력 1640년(인조 8년)[5] 11월 1일[6]응천부정 이돈의 차남 이석한과 부인 경주 김씨장남으로 태어났다. 14세에 사마 양시[7]에 급제한 직후 현종의 명으로 아들없이 죽은 큰아버지 도정궁 제4대 사손 이정한양아들이 되었다. 이후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으로 제수받아 덕흥대원군제사를 받들었다.

양아버지처럼 영위사(迎慰使)와 문안사(問安使) 등 청나라 사신을 맞이 및 전송하는 관리직을 맡았다. 1696년(숙종 22년) 6월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겸 오위도총부 부총관이 되었다.

3. 사망 [편집]

양력 1719년 1월 25일[8]에 별세했다. 향년 79세.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 덕송리, 지금의 현 남양주시 별내동 덕릉마을 수락산 뒤편에 있다.

4. 가족과 자손 [편집]

정실부인 기계 유씨와의 사이에서 3남 3녀를 두었다. 이후 도정궁 가계는 이세정(1661) 참조.

큰딸은 맹만택과 혼인하였다. 맹만택은 현종의 큰딸 명선공주의 부마로 결정되었다가 혼례 전 천연두로 명선공주가 사망해 결혼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원칙대로라면 부마[9]는 재혼을 못하지만 정식으로 혼인하기 전에 공주가 죽었으므로 재혼이 가능했던 것.

훗날 숙종 시기 맹만택의 딸이자 이홍일의 외손녀가 인현왕후 사후에 새 왕비 후보에 올랐었다. 인현왕후, 장희빈, 숙빈 최씨의 싸움에 질려 있던 숙종은 간택을 하면서 규수의 도덕성과 순종을 특히 강조했는데, 맹만택의 딸이 딱 적합하였다. 그러나 이홍일의 평소 사치스러운 생활 습관과 거만한 언행으로 사람들에게 미움받던 게 결정적인 결함 사유가 되어 결국 맹만택의 딸은 탈락하였다.(...)
[A] 1.1 1.2 1.3 사후 추증.[3] 이홍일의 양부 이정한의 동생.[5] 인조는 이홍일의 할아버지 뻘로 이홍일은 현종과 같은 항렬이다.[6] 음력 9월 18일.[7] 司馬兩試. 생원시와 진사시를 합쳐 이르는 말.[8] 음력 무술년(숙종 44년) 12월 6일.[9] 임금의 사위.

라이선스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은 문서는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문서의 기여자는 역사 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접두어의 N: - 나무위키 사용자, R: - 리그베다 위키의 사용자를 뜻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나무위키에서 동일한 문서의 역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