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태권도)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름 | 이준구(李俊九, Jhoon Rhee) |
국적 | |
생몰년도 | |
학력 | 텍사스 대학교 토목공학과 |
1. 개요 [편집]
2. 생애 [편집]
정작 한국인인데도 한국에서는 지명도가 높지 않지만, 인맥도 그렇고 태권도 8단의 무술 실력도 그렇고 여러 모로 대단한 인물임은 틀림 없다. 미국 내에서의 지명도는 한국보다 높았었다. 특히 이소룡이나 무하마드 알리,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같은 인물과도 친해서 이소룡이 가난했던 시절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1976년 무하마드 알리의 방한을 성사시키기도 했는데, 사실 국내에 이 사람의 이름이 알려지게된 계기도 이 이벤트 때문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1] 그리고 2000년대 중반 들어서는 케이블에 가끔 나오던 선삼정 광고로 알게 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3. 기타 [편집]
- 월간 신동아 인터뷰에 의하면 미국에 이민을 가서 태권도 도장을 차릴 당시, 듣보잡이던 태권도를 비웃으며 이미 자리를 잡은 근처 가라테 도장 사범인 일본인이 도전해오기에 발차기 몇 방에 넉다운시켰다고 한다. 그 사범은 패배를 인정하곤 도장 문을 닫고 이사를 갔다고 한다. 그때는 확실히 가라테가 더 잘나갔고 오히려 태권도와 가라테가 서로 간의 교류를 통해서 홍보를 했지 적대적으로 대하지도 않았다. 또한 당시 가라테 도장들은 이전부터 일본에서 가라데문화를 전 세계에 보급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세계에 홍보하고 있는 시대여서 그냥 뜨내기 가라테 사범을 보낼리 만무했다.(특히 유도는 19세기때부터 미주에서 홍보하고 다녔다.)
- 무함마드 알리의 한국 방한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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