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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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이장희는 1900년 11월 9일 경상북도 대구군 서상면(현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1가 105번지)에서 아버지 이병학(李柄學)과 어머니 밀양 박씨 박금련(朴今連)[2]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남소학교(현 대구종로초등학교)를 다니다가 대구공립소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였고, 이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교토중학(京都中學)을 졸업하였다.
문단의 교우 관계는 양주동·유엽·김영진·오상순·백기만·이상화 등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가정배경 또한 생모 박금련이 그의 나이 5세때 출산 도중 사망해 다른 이의 손에 자라야 했고 아버지가 조선총독부 서기, 통역 관련 일을 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해 집안의 경제적 지원이 줄곧 끊겼던가하면, 세 명의 계모와 열두 명의 이복형제들 그 사이의 갈등 때문에 사망할 무렵부터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크게 괴로워 했다.
이렇듯 그는 세속적인 것을 싫어하여 고독하게 살다가 1929년 11월 대구에서 음독자살하였다.
대구에 아직 그의 본가와 그가 방안에서 금붕어를 그리다 자살한 큰나무하숙집 역시 2019년 8월 현재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대표작으로 <봄은 고양이로다>가 있다.
문단의 교우 관계는 양주동·유엽·김영진·오상순·백기만·이상화 등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가정배경 또한 생모 박금련이 그의 나이 5세때 출산 도중 사망해 다른 이의 손에 자라야 했고 아버지가 조선총독부 서기, 통역 관련 일을 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해 집안의 경제적 지원이 줄곧 끊겼던가하면, 세 명의 계모와 열두 명의 이복형제들 그 사이의 갈등 때문에 사망할 무렵부터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크게 괴로워 했다.
이렇듯 그는 세속적인 것을 싫어하여 고독하게 살다가 1929년 11월 대구에서 음독자살하였다.
대구에 아직 그의 본가와 그가 방안에서 금붕어를 그리다 자살한 큰나무하숙집 역시 2019년 8월 현재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대표작으로 <봄은 고양이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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