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구(배구)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름 | 이인구(李寅九) |
생년월일 | |
출신학교 | |
포지션 | 레프트 |
신체사이즈 | 신장 200cm |
소속팀 | 현대자동차서비스 (1998~2002) |
1. 소개 [편집]
2. 선수 생활 [편집]
대전중앙고 -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한 후 현대자동차서비스의 지독했던 1990년대 중반 ~ 2000년대 초반 콩라인 시절에 레프트윙에서 가공할 만한 공격력을 보여 줬다. 하종화, 마낙길, 임도헌 등이 은퇴한 후 사실상 현대자동차서비스에서 주공격수를 맡았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호쾌한 공격과 기가막히게 잡아내는 블로킹, 그리고 샛노란 노란머리였다. 그래서 별명이 '배구코트의 로드먼' 그리고콩라인을 벗어나겠다고 슬램덩크(만화)의 강백호처럼 머리를 박박 밀어버린 적도 있었다(...).[1] 사실 탈모가 일찍 와서 그러기도 했지만.
어쨌든 현대자동차서비스의 지독했던 콩라인 시절에도 상대의 기를 꺾는 세리머니와 멋진 쇼맨십과 함께 미소를 잃지 않았던 선수.
그러나 고질적인 어깨 부상에 코칭스태프와의 갈등으로 2002년 11월 생각보다 일찍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2] 이런 이유로 은퇴한 후에는 스포츠 재활 처방사가 되어 부상당한 선수들의 재활을 돕고 있다.
한양대 시절 4학년때 주장을 맡아 후배인 최태웅, 석진욱, 손석범과 함께 한양대 64연승 신화의 전기를 마련했다.
첫번째 친 공이 성공하지 않으면 그날 경기를 망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플레이에 기복이 있는 편이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어이없는 범실을 범했던 것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해 대표팀 선발 제외, 삼성화재 주전 확보에 실패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호쾌한 공격과 기가막히게 잡아내는 블로킹, 그리고 샛노란 노란머리였다. 그래서 별명이 '배구코트의 로드먼' 그리고
어쨌든 현대자동차서비스의 지독했던 콩라인 시절에도 상대의 기를 꺾는 세리머니와 멋진 쇼맨십과 함께 미소를 잃지 않았던 선수.
그러나 고질적인 어깨 부상에 코칭스태프와의 갈등으로 2002년 11월 생각보다 일찍 은퇴할 수밖에 없었다.[2] 이런 이유로 은퇴한 후에는 스포츠 재활 처방사가 되어 부상당한 선수들의 재활을 돕고 있다.
한양대 시절 4학년때 주장을 맡아 후배인 최태웅, 석진욱, 손석범과 함께 한양대 64연승 신화의 전기를 마련했다.
첫번째 친 공이 성공하지 않으면 그날 경기를 망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플레이에 기복이 있는 편이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어이없는 범실을 범했던 것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해 대표팀 선발 제외, 삼성화재 주전 확보에 실패했다.
3. 관련 문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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