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강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출생 | |
사망 | |
학력 | 신흥무관학교 (졸업)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1895년 7월 3일 황해도 장연군 장연읍 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서간도로 망명하였고 1919년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뒤 성적이 우수해서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으로 선임되었다. 1919년 8월 북로군정서의 김좌진 사령관의 요청에 따라 북간도 왕청현 십리평에 설치된 사관연성소의 교관으로서 독립군 양성에 힘을 쏟았다. 1919년 12월 북로군정서 제4중대 제2소대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20년 10월 청산리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다.
1925년 재만 각지 민선대표 18명과 국내의 단체 대표 9명이 모여 항일 민족운동 단체인 신민부(新民付)를 결성하자, 이운강은 이에 가입해 활동했다. 그러나 일제 앞잡이의 모함으로 영고탑 감옥에 6개월간 수감되었다.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지속했다고 알려졌지만 이를 입증할 기록은 없다. 1945년 8.15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와 국군 창설에 참여했고, 1955년경 육군 중령으로 제주 병사구사령부의 참모장으로 재임했다. 예편 후엔 제주시에서 여생을 보냈고 1972년 11월 29일 제주시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이운강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했으며,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925년 재만 각지 민선대표 18명과 국내의 단체 대표 9명이 모여 항일 민족운동 단체인 신민부(新民付)를 결성하자, 이운강은 이에 가입해 활동했다. 그러나 일제 앞잡이의 모함으로 영고탑 감옥에 6개월간 수감되었다.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지속했다고 알려졌지만 이를 입증할 기록은 없다. 1945년 8.15 광복 후 한국으로 돌아와 국군 창설에 참여했고, 1955년경 육군 중령으로 제주 병사구사령부의 참모장으로 재임했다. 예편 후엔 제주시에서 여생을 보냈고 1972년 11월 29일 제주시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이운강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했으며,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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