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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1895년 평양부 희천군(현 북한 자강도 희천시)에서 이재후(李載厚)와 최재신(崔載信)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숭실중학교,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의과대학원 의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중국 베이징 협화대학 부속병원에 내과의로 근무하였다. 이때 안창호를 만나 1924년 흥사단에 입단하였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1941년 8월 친일 단체 조선임전보국단의 전신인 임전대책협의회(臨戰對策協議會)에 위원으로 참여하였고 같은 해 9월 7일 이각종 등과 함께 남대문 앞에 전쟁 채권을 들고 나서서 "銃後奉公(총후봉공)은 채권으로부터"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중들에게 일제에 협력할 것을 독려했다#. 이후에도 유억겸·장덕수·최용달·윤치호·현제명 등과 함께 친일 전향자 단체인 대화숙(大和塾)에서 활동하고 매일신보에 친일 연설을 기고하는 등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활동하였다.#
이후 중국 베이징 협화대학 부속병원에 내과의로 근무하였다. 이때 안창호를 만나 1924년 흥사단에 입단하였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검거되어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1941년 8월 친일 단체 조선임전보국단의 전신인 임전대책협의회(臨戰對策協議會)에 위원으로 참여하였고 같은 해 9월 7일 이각종 등과 함께 남대문 앞에 전쟁 채권을 들고 나서서 "銃後奉公(총후봉공)은 채권으로부터"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중들에게 일제에 협력할 것을 독려했다#. 이후에도 유억겸·장덕수·최용달·윤치호·현제명 등과 함께 친일 전향자 단체인 대화숙(大和塾)에서 활동하고 매일신보에 친일 연설을 기고하는 등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활동하였다.#
美國(미국)은 건국의 역사 그 자체가 약탈에서 시작되어 횡폭과 잔인한 피(血)로 세운 나라인 만치 그 국가의 의가 있을 리 없으며…… 이런 나라를 조국으로 가진 美國人(미국인)의 본성이 잔인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문명하다는 그놈들은 오늘날 조금도 주저하지 아니하고 감행하고 있습니다. 이놈들이야말로 元(원)의 대군과 같이 太平洋(태평양) 바다 속에 몰살하지 아니하면 東洋(동양)의 평화는 영원히 바랄 수 없을 것이다.
3. 선거 이력 [편집]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50 | 제2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제1선거구(인천시 갑구)) | 9,032표 (29.96%) | 당선 (1위) | ||
1954 | 제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제1선거구)) | 무소속 | 3,090표 (15.66%) | 낙선 (4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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