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일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성명 | 이수일(李壽逸) |
이명 | 이수기(李壽麒, 李壽鹿+基) 이숭향(李嵩鄕)·이숭경(李崇卿) |
본관 | |
생몰 | |
추서 | 건국포장 |
1. 개요 [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편집]
이수일은 1885년 1월 29일 경상도 칠곡도호부 파미면 관동(현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관터마을)에서 태어났다.
1919년 '파리장서'를 가지고 중국으로 건너가 활동하던 김창숙은 독립운동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1925년 이회영 등과 함께 내몽골 지역에 황무지를 개간해 독립군을 양성할 계획을 세웠고, 그에 필요한 군자금 모집을 위해 같은 해 국내로 들어왔다.
이때 이수일은 김창숙을 도와 김헌식(金憲植)·이영로(李泳魯)·홍묵·이동흠(李棟欽)·이종흠(李棕欽) 등과 함께 경상도 일대에 파견되어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3]그러던 중 1927년 7월 26일 생명이 위독한 아내를 만나러 집에 들렀다가 왜관면의 일본 경찰에 폭행을 당한 후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66년 4월 8일 별세하였다.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1919년 '파리장서'를 가지고 중국으로 건너가 활동하던 김창숙은 독립운동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1925년 이회영 등과 함께 내몽골 지역에 황무지를 개간해 독립군을 양성할 계획을 세웠고, 그에 필요한 군자금 모집을 위해 같은 해 국내로 들어왔다.
이때 이수일은 김창숙을 도와 김헌식(金憲植)·이영로(李泳魯)·홍묵·이동흠(李棟欽)·이종흠(李棕欽) 등과 함께 경상도 일대에 파견되어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3]그러던 중 1927년 7월 26일 생명이 위독한 아내를 만나러 집에 들렀다가 왜관면의 일본 경찰에 폭행을 당한 후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66년 4월 8일 별세하였다.
2005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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